공적자금으로 살린 회사 기업사냥꾼에 안긴 캠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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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내 가구시장에서 2~3위를 다투던 B가구는 1991년 부도를 낸 뒤 이듬해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부실채권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한 다음 2007년 6월 주식 매각을 추진했다.

B가구 인수를 노리던 K건설은 자금이 부족하자 공동 투자자를 찾았다. 이때 소개받은 인수합병(M&A) 전문가가 I홀딩스 회장 정모(45)씨였다. 양측은 인수 자금을 절반씩 내고 지분을 나눠 갖는 조건으로 컨소시엄을 꾸렸다.

정씨는 캠코에서 퇴직한 이모(52)씨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1억9000만원을 주고 입찰 참가 예상 업체 명단과 업체별 입찰 동향 등을 넘겨받았다. 퇴직 전까지 캠코에서 B가구 매각 업무를 담당했던 이씨는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던 맹모(45)씨에게서 정보를 빼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인수전에 나선 정씨와 K건설 컨소시엄은 그해 6월 29일 B가구 인수자로 선정됐다. K건설 측은 계약금 60억원을 부담했다.

정씨는 이틀 뒤인 7월 2일 바로 ‘작전’에 들어갔다. 서울 서초동 호텔방을 빌려 예전부터 잘 알던 전직 증권사 직원 2명과 함께 고가 매수·통정 매매 등 각종 수법을 동원해 B가구 주가를 띄웠다. 1만600원이던 B가구의 주가가 2배 가까이 올랐다. 정씨는 이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렸다. 정씨와 K건설은 8월 22일 잔금 493억원을 치르고 B가구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들인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주가를 조종하는 데 쓴 15억원도 K건설에서 빌린 것이었다. 작전이 끝난 8월 28일 B가구의 주가는 2만1450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사실은 정씨와 K건설 측이 경영권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증권거래법 위반과 입찰 방해 등 혐의로 정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K건설 대표이사 정모(50)씨 등 2명과 이씨 등 캠코 전·현직 직원 2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사채업자에게 B가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더라도 당시 주가로는 인수 대금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판단한 정씨가 주가 띄우기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B가구 인수 후 사채업자들이 이 회사 주식을 대량 매도해 주가가 급락하면서 정씨는 시세 차익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현준 금융조세조사1부장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어렵게 정상화한 기업을 매각하면서 캠코가 입찰 참여 업체의 재무구조를 사전에 살펴보지 않아 무자본 M&A 세력이 낙찰받을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철재 기자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1962년 성업공사령에 따라 출범한 준정부기관. 부실기업이나 부실채권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한 뒤 매각하는 ‘배드뱅크’의 기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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