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필리핀 산림보호소송 승소한 오포사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산림파괴를 막기 위해 필리핀 어린이들이 앞장서 소송을 냈을 때 모두들 비웃었죠. 하지만 이 소송으로 92개 벌목 회사가 12개로 줄었어요. 어린이들이 미래 환경의 주인임을 입증한 사건입니다."

25일 녹색연합과 생명회의가 주최한 '미래세대의 환경권 실현을 위한 토론회' 참석차 내한한 필리핀 변호사 안토니오 오포사(45).

그는 "환경권은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세대도 마땅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오포사는 지난 5월 4일 어린이 2백50명이 원고로 나선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 소송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래세대 소송' 을 맡아 승소로 이끈 필리핀의 대표적 환경 변호사.

미래세대 소송에서 그는 1990년 무차별 벌목으로 파괴되어 가는 천연림을 보전하기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 43명을 원고로 내세웠다.

당시 필리핀의 원시림은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92개 벌목사업자들의 무차별 벌채로 10년 앞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3월 지방법원은 '어린이는 법적인 능력이 없어 원고 적격자가 아니므로 소송을 각하한다' 는 결정을 내렸다.

오포사는 '환경 파괴로 실질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이들이 실질적인 법률 이해당사자' 라며 즉각 고등법원에 항소, 어린이의 법적 자격을 인정받았다.

이어 3년 넘게 진행된 치열한 법정싸움 끝에 93년 7월 승소판결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처음으로 명시했고 판결 이후 정부에서는 80개 벌목회사의 허가를 취소하는 한편 마구잡이 산림훼손을 금지시키는 등 천연림 보전에 적극 나섰다.

그는 어린이 소송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97년 5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수여하는 '글로벌 5백인상' 을 수상했다.

오포사는 "무분별한 개발 결정으로 한번 파괴된 환경은 후세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준다" 며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위해 뛰는 시민단체와 어린이들에게 행운을 기원한다" 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