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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비자가 첫 번째 고비, 목돈 월세 보증금은 두 번째 고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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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22면

나메카타 나쓰키가 매료됐던 한국의 고궁 앞에서.

서울 생활 5년째인 일본 지바현 출신의 나메카타 나쓰키(行方夏樹·31·여).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 여행을 한 것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다. 지금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한국인 남자친구까지 생겼다. 조만간 한국인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한국서 정착 꿈꾸는 일본인 나메카타 나쓰키

‘여고생 나쓰키’를 매료시킨 것이 조금 의외였다. 한글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국 하면 불고기하고 김치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경복궁에 가서 한국문화를 접하는 순간 한국을 좋아하게 됐지요. 특히 한글이 신기했어요. 동그라미(ㅇ)하고 네모(ㅁ)를 글자로 쓰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용사마(배용준) 때문은 아니었어요. 호호.”

도쿄에 있는 다쿠쇼쿠대(拓殖大) 영문학과에 진학한 나쓰키는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했다.2005년에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1년3개월간 고려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나쓰키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 아시아나항공 나리타 지점에서 일했다.2007년엔 취업비자를 받아 연어처럼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지금은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인 ‘이지 코리안 아카데미’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취업비자를 얻는 것부터 그랬다.

“외국인이 한국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대학을 나와야 해요. 또 어떤 것을 공부했는지 조사를 해요. 취직하려는 회사와 관계 있는 사람인지를 보는 거죠. 그래서 저도 처음엔 비자 받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지 코리안에 자리가 나서 받을 수 있었던 거죠. 제 주변엔 한국에 가고 싶은데 고교밖에 안 나왔거나 전문대밖에 안 나와 한국에 들어오는 걸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수트 케이스 하나만 달랑 갖고 서울에 들어온 나쓰키에게 두 번째 관문은 집이었다. 특히 한국의 보증금 문화가 장애였다.
“큰돈을 가져와야 하니까요. 일본에는 보증금이란 게 없거든요. 보증금이 없으면 월세가 너무 비쌌고요.”

나쓰키는 현재 서울 구로동의 오피스텔에 1000만원을 보증금으로 맡기고 입주해 있다. 월세는 한 달에 50만원. 오피스텔엔 가재도구까지 갖춰져 있었다. 전기·전화·가스·인터넷 등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그러나 서울의 교통문화는 한국에 적응하는 데 세 번째 장애였다.

“저도 자동차 운전하고 싶은데 서울에선 운전을 못할 것 같아요. 가령 벤츠 앞에 작은 차가 있으면 (벤츠가) ‘빨리 가’ 하더라고요. 여자들이 조그만 차를 타고 혼자 있으면 ‘비켜’ 하고요. 한국 사람들이 조금…기다릴 수 없는 성격이 있나 봐요.”
총알택시, 승객이 차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출발하는 버스, 일부 운전기사들의 불친절…. 나쓰키가 차 안에서 겪은 일은 많다.

“처음에는 버스 뒤쪽에 있었는데 (급정차를 여러 번 하는 바람에) 나중엔 앞쪽까지 밀려간 적도 있어요. 지하철을 탈 때는 사람들이 먼저 내리고 나면 그 다음에 타야 하는데 아줌마들 때문에 내릴 수 없었던 적도 있었고요. 한국에선 아줌마가 파워 있는 거 같아요.”

네 번째 애로사항은 의료 문제였다.
“지난해에 치과·내과·외과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가 너무 비싸요. 특히 치과가 그랬어요. 일본은 치과도 보험이 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안 되니까 일본 같으면 10만원 정도 나올 게 30만원쯤 나오는 것 같아요.”

한국인들의 느긋한 시간 관념 때문에 애 먹은 일도 많았다.
“12시에 만나자고 하면 12시30분이나 1시에 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일본은 약속시간 15분 전까지 가서 기다려요. 그렇게 하도록 학교에서 배웠어요.”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역사적 관계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 가운데 종로3가에 가면 탑골공원 부근에서 일본 사람들만 보면 욕하는 분들이 있어요. 한국어를 못 알아듣겠지 하고요. 근데 저는 알아들었거든요. 마음이 아팠지만 가만히 있었어요.”
그럼에도 나쓰키는 한국을 사랑한다. 삼계탕 같은 한국의 음식도 좋지만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예절 바른 문화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어르신 문화랄까요? 한국은 부모님을 아주 공경해요. 남자친구는 우리 부모님 앞에선 술도 몸을 돌리고 마셔요. 담배도 밖에 나가서 피고요. 우리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세요. 일본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나쓰키가 꼽은 한국의 매력은 친절이었다.

“일본에서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면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근데 한국인은 안 그랬어요. 저도 여러 번 길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찾는 곳에 전화를 걸어주거나 심지어 데려다 준 사람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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