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의 세계] 수식관(隨息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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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숫자를 호흡에 맞추어 세는 수식관(數息觀)말고도 또 다른 뜻의 '수식관(隨息觀)' 이 있다.

전자는 흔히 초심자에게 권고된다. 이에 비에 후자는 상급자에게 알맞는 호흡법이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서 수(隨)라는 글자가 지니는 참뜻은 "쉬엄쉬엄 쫓아 따라간다" 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후자의 호흡법은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숨과 들이쉬는 숨을 뒤쫓아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때 뒤쫓아 가는 주체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마음' 이다. 마음이 숨과 하나가 되어 나갈 때는 아주 나가버리고 들이 쉴 때는 들어와 버리는 것이 '수의관' 의 숨쉬기다.

한데 이것을 지속한다는 것은 숨을 숫자에 맞추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게 사실이다. 조용히 호흡하면서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숨을 잊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잡념과 망상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나갈 때 나가고 들어 올 때 들어와 버리는 것이 '관성화(慣性化)' 돼야 한다.

관성화가 되면 마음과 호흡이 합일(合一)이 되고 날숨과 들숨이 이른바 '출입일여(出入一如)' 가 된다. 이런 숨쉬기가 바로 선(禪)을 완성으로 이끄는 법이다.

사실 숨을 내뱉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우주에 융합시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숨을 들이 쉰다는 것은 우주를 몸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따라서 '출입일여' 가 된다는 것은 나와 우주가 일체(一體)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호흡법은 철저하게 숨쉬기의 본질(本質)을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숨쉬기에서 날숨은 '모든 것의 시작' 이고 들숨은 '모든 것의 끝' 이다. 말하자면 날숨은 알파이고 들숨은 오메가인 셈이다.

따라서 '출입일여' 가 되면 시작과 끝이 하나(一)이고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가 돼 버리고 만다.

이것은 결국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원리가 '하나' 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을 소위 밀교(密敎)수행에서는 아우(阿旴)호흡법과 연관짓기도 한다.

여기서 '아(阿)' 는 숨을 뱉을 때 입의 모양이고 '우(旴)' 는 숨을 들이쉴 때의 입모양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아' 는 만법발생(萬法發生)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고 '우' 는 만법귀착(萬法歸着)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이규행 한국 현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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