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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스스럼없는 평양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8월 15일 오후 1시7분 고려항공 기내.

고려항공 비행승무원 유혜영(24)씨. 통통한 볼과 서글서글한 눈매가 전형적인 평양 미인이다.

"이 금강산샘물로 말씀드리자면 남성동무가 마시면 선남이 되고 여성동무가 마시면 선녀가 됩니다" 라는 유씨의 말이 평양으로의 비행에 조금은 긴장된 기내의 분위기를 일순 바꿔놓는다.

북측 사람과의 첫 만남.느낌이 좋다.

사진을 함께 찍어도 되겠느냐는 부탁에 유씨는 "무슨 상관 있습네까. 다정히 찍지요" 하며 기꺼이 포즈를 취한다.

유씨는 평양공항에서 트랩을 내리는 남측 사람들에게 일일이 배웅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정 들었습니다."

"만남이 너무 짧아 아쉽습니다."

그녀는 남쪽 사람들과의 짧은 비행을 진정 아쉬워하는 듯했다.

- 15일 오후 8시 평양시 중구역 인민문화궁전 만찬장.

29번 테이블. 맞은 편에 앉은 북측안내원 민병관(41)씨.담배를 권하자 "아 이거 디스죠. 디스, 디스플러스 다 압니다.남측 담배가 제겐 좀 약합니다."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살며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왔다는 민씨는 남쪽 생활을 꽤 소상히 알고 있는 듯했다.

- 16일 대동강 유람선 '평양1호' 선상.

유람선 식당에서 만난 부기지도원(경리) 윤봉희씨는 "통일의 해에 다시 만납시다" 라며 찐 강냉이와 청포도를 계속 내왔다.

- 17일 오후 2시 무렵 고려호텔 매대(상점).

호텔 1층에 위치한 매대의 출납원 강정애(26)씨. 평양 장천구상업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강씨는 "출납원은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판매원과는 다르지요" 라며 자신의 직업을 자랑하면서 요즘엔 북한에서도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힘들여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미모의 강씨는 사진을 찍자는 기자의 요구에 "안됩니다.애동지(애인)가 허락하지 않으면 낯선 사람과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라며 끝내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았지만 미안함과 순진함이 배어 있는 미소를 잊지 않았다.

8.15 이산가족 방북단과 동행해 평양에서 보낸 4일 동안 만난 평양 사람들은 하나 같이 활발하고 친절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고 정이 잔뜩 밴 특유의 말투 속에서 남쪽을 향한 그들의 열린 마음과 함께 한핏줄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진석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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