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숨겨진 얘기 담은 '노신영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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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공직에서 물러난 후 많은 분들이 나에게 회고록을 집필하도록 권했고, 어떤 이는 그것이 고위직을 역임한 공직자의 책무라고도 했다…. 회고록에는 나만의 사연이 있다. 맏아들인 나는 이북에 계시던 부모님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회고록은 부모님 영전에 바치는 나의 인생보고서이기도 하다."

관료 출신 직업외교관 생활 27년 이후 5공시절 안기부장.국무총리 등 굵직한 요직을 역임한 노신영(70.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씨는 자서전을 펴내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공직자의 책무이자 선친에게 바치는 삶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원고량은 2백자 원고지 1천5백장. 두툼한 '노신영 회고록' 의 미덕은 본인이 밝혔듯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썼다' 는 점이다.

우리사회의 엘리트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기록을 남긴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 비춰 이 점은 일단 상찬의 대상이다.

이를테면 최근 나왔던 3공시절 정무 제1수석 유혁인씨의 유고집 '만월홍안' 도 우리의 아쉬움을 줬다.

대통령을 보좌하던 당시 정치상황을 그리고 싶다는 본인의 강력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실은 토막난 일기기록이 전부였다.

따라서 '노신영 회고록' 은 나남출판에서 9월 출간되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 회고록과 함께 각별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노신영 회고록' 은 글쓴이 주관을 드러내거나 별다른 수사(修辭) 등을 배제해 상당히 드라이한 편이다. 그 때문에 읽는 맛은 덜하지만, 성실함에 힘입은 꼼꼼한 서술이 신뢰감을 준다.

1955년 외무부 촉탁 시절 봉급이 월3천원에 '잡곡 섞인 쌀 20㎏' 이었다는 사실을 포함한 연도별 주요 사실에 대한 기억도 정확해 보인다.

사실 저자는 20대 시절부터 '노신영 장서' 라고 명기한 고무도장을 만들고, 모든 책에 일련번호를 기입해온 사람이다.

이런 정리벽은 한때 대권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던 경력에도 불구하고 온건합리주의자로 평가받았던 온유한 성품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평남 강서 출신. 중2시절 '월남해 공부를 계속하라' 는 선친의 권유에 따른 서울생활, 이후 군고구마 장사를 하며 대학을 다녔고 전시(戰時) 부산에서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이런 개인사도 흥미롭지만, 역시 관심은 공직생활 회고 대목이다.

주 제네바 대사를 거쳐 신군부에 의해 외무장관에 발탁된 이후 전두환 대통령의 방미, 88올림픽 유치 등 핵심 현안을 다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다할 새로운 사실이 드문 점이 아쉽다. 80년 외무부 공무원 숙정 때 숙정자 명단을 극소화하는 노력을 했다는 점 등이 보일 뿐이다.

다소 밋밋한 이런 서술은 본인 말대로 '시골 닭 서울 온 듯' 얼떨떨했던 안기부장 취임식과 총리 취임 이후 주요 사건들인 김대중씨 석방, 대한항공기 격추, 학원안정법 파동 등의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단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물러나게 된 과정에 대한 서술 등은 당시의 급박했던 정국을 짐작케 해준다.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자신의 진언에 대통령이 '혼자만 편하겠다는 거요?' 하고 일갈해 일단 유임되나 싶었으나 바로 이튿날 '총리 생각대로 하시오' 라는 대통령의 말과 함께 퇴진을 해야 했다.

결국 '노신영 회고록' 은 성실했던 한 공직자의 체취를 맡기에는 유감이 없다. 그러나 현대사 기록으로는 다소 미흡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은 피할 수 없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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