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방북하는 한재일씨의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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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산가족 상봉단에 포함된 한재일(82.서울 월계동)씨는 북의 처와 아들, 남동생.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15일 평양을 방문한다.

남한의 부인 소복순(78)씨와 방북 준비를 하며 느끼는 감회 등을 일기로 정리했다.

방북을 이틀 앞둔 8월 13일. 서울은 며칠째 폭염이지만 요즘은 마음이 바빠 더운 줄도 모른다.

어제는 하루종일 서울 종로.청계천을 돌아다니며 북에 둔 아내와 아들, 여동생.남동생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 선물 비용으로 20만원을 예상했다.

이 돈으로 겨우 준비한 것이 손목시계 10개, 전자계산기 4개, 누룽지사탕 10봉지, 볼펜 24자루.

오늘 아침 성당엘 다녀왔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게 해 준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평양 갈 때 입을 회색양복 한벌과 넥타이를 샀다.

아내는 와이셔츠도 한벌 사라지만 아껴서 북에 있는 처.자식에게 현금으로 주는 것이 낫다 싶어 헌 셔츠를 입기로 했다.

오후 들어 여행가방까지 대충 꾸리고 나니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1950년 7월 20일 오후. 평북 평원군 순안기계제작소에 출근했다가 인민군에 징집돼 트럭에 실려있을 때 당시 북한의 아내가 아들 영선이를 등에 업고 찾아왔었다.

아내는 영문도 모른 채 "잘 다녀오라" 며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짐작이나 했겠나. 그후 인민군으로 전장터를 헤매다 충북 진천에서 도망쳤다.

전쟁이 끝난 뒤 북에 있는 가족들 소식이 궁금해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운 곳을 찾는다고 강원도 철원으로, 화천으로 휴전선 주위를 맴돌았다.

아들 영선이에게 무슨 말을 할까, 잠시 메모해 보았다.

'영선아, 아비를 먼저 원망해다오. 세살 난 너를 떼어놓고, 아비 노릇 한번 제대로 못했던 내가 이렇게 떳떳하게 네 앞에 설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50년 동안 너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단다. 목놓아 마음껏 울자. 그리고 지난 세월 못나눴던 얘기, 실컷 나누자꾸나.'

하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필경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지난 8일 적십자사로부터 '상봉단에 포함됐다' 는 통보를 받은 뒤 잠이 오지 않고 입맛도 없어졌다. 오늘 밤은 더욱 그렇다.

이틀 뒤면 꿈에 그리던 자식을 만날텐데 설레는 마음 한구석에 왠지 모를 불안감도 숨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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