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노벨평화상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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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인가. 노르웨이의 한 언론인은 자신의 취재결과를 이렇게 알려왔다.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는 여정(旅程=프로세스)은 아직 노벨평화상을 받는데는 미치지 못한다. 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게 가능(possible)은 하지만 실제로 그럴 것 같지는(probable)않다. "

그는 노벨상 심사가 10월 중순까지 끝나기 때문에 8월과 9월 중 남북관계에 새로운 진전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의 10월 이전의 서울방문이나 그 일정의 발표, 또는 경의선 복구의 삽질 같은 것이다.

金대통령은 1백50명의 노벨평화상 후보 중에서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유력한 후보의 한사람이다.

중동평화가 타결되면 클린턴이 이스라엘의 바라크 총리와 공동수상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중동평화의 전망은 어둡다.

반면에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허물고,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문제는 김정일이다.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에 대한 노벨평화상은 양쪽 지도자에게 공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키신저와 북베트남 평화협상대표 레둑토(73년), 이집트의 사다트와 이스라엘의 베긴(78년), 남아프리카의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93년),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의 라빈과 페레스(94년), 북아일랜드의 존 흄과 데이비드 트림블(98년)이 그랬다.

김정일이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을 불량국가의 명단에서 빼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미사일 포기를 전제로 하는 북.미관계의 확실한 진전이 필수적이다.

북한이 남한의 야당총재와 일부 언론사에 대한 폭언으로 남한 정치와 언론활동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북한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金대통령이 지난해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면 그것은 근거없는 기대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중동평화가 타결되지 않는 한 업적에서 金대통령의 경쟁력은 높다. 남북관계의 개선에 따른 한반도 평화가 아직은 노벨평화상의 공적에 못미친다면 북한이 변덕을 부리지 않는 한 내년도까지는 업적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은 원칙적으로 전년도의 업적을 근거로 수여되는 것도 유리하다.

노벨평화상은 문학상과 함께 뒷말이 많다. 1953년 처칠이 노벨평화상 아닌 문학상을 받았을 때는 당연히 영국에 의한 정치적인 압력의 의혹을 샀다.

74년 일본총리 사토 에이사쿠가 비(非)핵선언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자 공적의 함량미달이라는 비판과 함께 엔화의 위력이라는 논란이 일어났다.

72년 닉슨이 베트남에서 명분없는 전쟁을 치르면서 미.중관계 개선의 공로를 가지고 노벨평화상을 타겠다고 새삼스럽게 책을 출판하고 거국적인 로비와 압력을 동원한 것은 파렴치한 행동이었다. 그는 결국 후보를 사퇴해야 했다.

모든 상은 노력한 결과에 주어지는 것이지 상을 받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업적을 쌓아서 받는 것이 아니다. 노벨평화상도 예외일 수 없다.

남북관계는 아직도 살얼음판 같다. 남북한의 양金이 그 살얼음판 위에서 평화라는 화려한 수사(修辭)로 백성들에게 최면을 걸려고 하지 말고 최소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그들의 소박한 소망을 위해서 사심없이 헌신한다면 노벨평화상의 반열에 들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빈약한 다수를 믿고 큰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외정책의 성공의 조건은 국내의 컨센서스라는 의미다. 햇볕정책의 성공도 '남남화합' 에 달렸다.

여야의 무한대결로 정치가 마비상태에 빠진 현실에서는 건전한 남북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노벨평화상의 출발점은 평양이 아니라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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