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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신용카드문화 '세상을 맑게 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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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회사원 박준호(31.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올들어 카드사용 횟수가 부쩍 늘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4만~5만원이 넘을 때나 카드를 썼지만 지금은 밥값이든, 커피값이든 1만원이 넘으면 반드시 카드를 사용한다" 고 말한다.

명동 D우동집 金모(50)씨. 4천원짜리 우동이 주 메뉴다. 지난해만 해도 현금과 카드의 비중이 8대2 정도였지만 지금은 6대4 정도. 카드결제비중이 두배로 늘어난 만큼 올해 세금도 크게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다.

金씨는 "카드를 안받으면 장사를 할 수 없는 형편" 이라면서 "대신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종전에 현찰거래했던 재료값을 카드로 끊거나 계산서를 챙겨 받고 있다" 고 말했다.

신용카드가 소리없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우선 거래관행을 바꾸면서 차츰 세상을 투명하게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 소액도 카드〓여신전문금융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전체 카드사의 이용실적은 88조1천5백16억원으로 지난해 연간실적 90조7천8백27억원에 육박했다.

카드결제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던 1만원 이하의 소액결제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BC.LG.삼성.외환 등 4대 카드사의 1만원 이하 소액 사용건수는 9백95만건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4백22만건보다 1백% 이상 늘어났다.

이제 백화점이나 고급 식당뿐 아니라 재래시장이나 동네 음식점까지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으면 장사가 어려울 지경이다.

덕분에 신용카드사들은 돈 방석에 앉았다. LG캐피탈이 올 상반기 중 1천6백8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을 비롯, 삼성(1천3백45억원).국민(1천2백4억원).외환카드(4백억원) 등은 모두 지난해 상반기보다 순이익이 2백~3백% 늘어났다. 올해 금융기관들 가운데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처럼 카드사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1등공신' 은 올해부터 시행된 '영수증복권제' 와 카드사용액 세금 공제제도 등이다.

특히 영수증복권제의 경우 일반인들의 카드사용을 막바로 끌어올렸으며, 가맹점 주인들이 고객들의 소액 결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명분' 을 만들어주는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 세수도 늘고 투명성도 높이고〓LG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비처리가 가능했던 간이영수증이 쓸모없게 되면서 올해부터는 차를 한잔 접대해도 모두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같은 신용카드 확산은 두가지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가 있다. 소비자들은 카드 결제를 통해 길면 50일 정도 무이자로 돈을 빌리는 혜택을 얻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거래가 카드결제를 통해 일일이 기록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세원이 노출된다.

국세청은 카드사용이 이같은 추세로 늘어나면 올해 적어도 2조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주세(酒稅)징수액(2조2백억원) 만큼을 신용카드 사용 확산 하나만으로 '앉아서' 해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영수증복권 당첨자를 확인하다 다른 사람 명의로 위장 가입한 업주가 적발돼 세무조사까지 당하게 된 경우가 나오는 등 거래의 투명성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매업자들의 거래가 투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들은 세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도매업자들에게 세금계산서나 카드결제를 요구하게 될 것" 이라며 "결국 무자료거래나 탈세거래가 크게 줄어들어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상거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모든 비용을 카드로 처리하게 된다면 비자금을 만들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따라서 부패 소지도 줄어들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 고객 보호 강화해야〓카드 사용이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변호사 등 전문직 업종에서는 아직 카드결제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여신전문금융협회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우 사업자의 80% 정도가 카드를 받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50~60%에 그치고 있다.

또한 일부 업소에서는 카드사용시 가맹점 수수료를 고객들에게 전가시키거나 불법적인 매출행위를 하는 구태도 남아 있다.

여전협회 박세동 이사는 "카드사용이 폭발적으로 늘긴 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사항도 많아지고 있다" 며 "카드사용을 정착시키기 위해 소비자 보호제도를 강화하고 가맹점 관리를 보다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 밝혔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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