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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성차별 설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여자를 신용하는 남자는 도둑을 신용하는 멍청이와 같다' 고 말한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헤시오도스였다.

요즘 같으면 성차별이니 어쩌니 해서 무사하지 못할 소리를 마구 떠들 수 있었던 걸 보면 그 때만 해도 남성들 살기엔 참 편한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여성혐오증' 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미소지니(misogyny)' 도 고대 그리스가 원산지다.

그리스어로 혐오(증)를 뜻하는 '미소(miso)' 와 여성을 의미하는 '지노(gyno)' 의 합성어가 미소지니다.

여성을 우습게 아는 남성의 '고질병' 에서 사실 동.서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남자가 맹세를 하면 여자는 배신을 한다" 는 셰익스피어의 말도 요즘 기준으로 보면 영락없는 제소감이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세치 혀를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하는 한심한 남자들의 딱한 사연이 요즘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동료 여성의원에게 '싸가지' 운운했던 한 남성의원은 공개적으로 머리 숙여 사과하는 '수모' 를 겪었다. 여성의원이 머리띠를 동여매고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동료 여성의원들까지 가세했다.

며칠 전에는 한 고위 공직자가 출입기자들과 점심을 먹다 뱉어낸 말 몇마디 때문에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하루아침에 그만 두기도 했다.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만든 유사(類似)폭탄주 몇잔이 화근이 됐는지 모르지만 그는 장관을 일본어식으로 '아키코(明子)' 로 지칭하는가 하면 "우리 마누라와 동갑인데도 아키코상은 아직도 곱다" 며 쓸데없는 참견을 한 걸로 전해진다.

게다가 회식에 참석했던 두 여기자를 차에 태워 따로 배웅하면서 뿔테 안경 쓴 여기자에게 "여자가 안경을 쓰면 매력이 떨어지니 벗고 다니라" 느니 "(남녀공학인)K대나 Y대 출신 여학생은 안좋지만 (여대인)E대 출신은 괜찮다" 느니 하며 시덥잖은 농담을 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던 모양이다.

성(性)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이 성차별이다. 그 자체로는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중립적 표현이지만 아직은 여자가 남자로부터 당하는 차별을 가리키는 것이 현실이다.

역차별 논란도 없진 않으나 아직까지 여성의 남성차별이 사회적으로 문제된 예는 거의 없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대우를 누리기 전까지는 성차별로 설화(舌禍)를 입는 남성들의 어처구니없는 얘기는 사라지지 않을 성싶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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