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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500호 월간 '기독교사상' 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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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진 군부독재시절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교양필독서였던 월간 '기독교사상' 이 지령 5백호(8월호)를 냈다.

'기독교사상' 은 1957년 기독교의 사회참여 목소리를 대변하는 잡지로 창간돼 '사상계' 와 함께 당시 지식인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상계' 가 70년 김지하씨의 '오적(五賊)' 을 게재한 사건으로 폐간된 이후 70.80년대를 지나면서 '기독교사상' 은 지식인 사회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기독교사상' 은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대학생등 독자들이 늘어나자 이들의 요구에 부응, 민중신학.해방신학.도시선교 등 진보적 기독교 사상만 아니라 노동운동이나 빈민운동과 같은 사회적 움직임에 대한 글들도 많이 소개했다.

이 잡지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은 각종 대중강연회를 통해 당시로선 금기였던 체제비판의 시원시원한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74년 지령 2백호를 낸 기념으로 마련한 전국 순회강연에서는 반유신운동으로 해직됐던 김용준.서광선.김동길.한완상씨 등 당대의 인기 지식인들이 대거 등단해 주목을 받았다.

'기독교사상' 은 이같은 논조에 따라 두차례 책을 내놓지 못하는 시련을 겪어야했다.

첫번째는 74년 시국강연회를 마친 직후인 75년 5월호가 판매금지된 것.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위한 산업선교에 기독교가 적극 나서야한다는 취지의 글이 실리면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전시금지를 당했다.

두번째는 5공 시절인 85년 '자진정간' 이란 형식으로 사실상 강제폐간됐던 일. 당시 한 기독교모임에 대한 르뽀기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문제가 됐다.

모임에 참가했던 한 철거민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북한에 가면 공산주의니까 살 집을 주지않겠느냐" 며 한탄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했던 부분이 문제가 됐다.

관계기관으로부터 "조용히 자진해 정간하겠느냐, 아니면 법대로 처벌받겠느냐" 는 압력을 받고 자진정간을 택했다.

당시 주간을 맡았던 조만(62)목사는 " '기독교사상' 은 사회를 향한 기독교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지않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독재정권과 부단한 마찰을 겪었고, 두차례의 시련도 사실은 그같은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사전검열을 받으면서도 최대한 살아있는 정신을 담고자 노력했다" 고 회고했다.

86년 5월 복간된 이후 기독교사상은 참여와 비판의 목소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강한 이미지는 약해졌다는 평을 받아왔다.

6.29이후 민주화와 함께 다양한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비판적 목소리가 낮아진 영향도 적지않다.

편집인 정길호(36)씨는 "시대의 변화로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기독교사상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를 고민하는 잡지다.

그같은 정신은 변함이 없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최근 무거운 글을 읽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을 독자로 확보하는 일" 이라고 덧붙였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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