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일수록 "대북지원 확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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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 국민은 북한의 핵무기 문제에 어느 정도 위협을 느끼고 있을까. 통일의 당위성과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부의 일반적인 북한정책과 통일에 대해 사회 계층별 인식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국민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고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원칙에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어떤 이슈들에 대한 답변에선 이념.빈부.세대.지역 갈등 같은 사회 계층별 분열구조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났다.

북한 핵에 대한 위협 인식에서 이념.세대 갈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위협이 '매우 심각하다'고 느낀 비율은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집단에서 45%로,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집단의 30%보다 높았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념이나 세대보다 응답자의 출신지역에 따라 의미 있는 차이가 발견됐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을 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영남 출신 주민들은 10%대가 공감했다. 반면 호남 출신 주민들은 30%가 넘었다.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은 인도적 목적에 한정돼야 하고 현재 수준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였다. 하지만 출신 지역에 따른 의견 차이는 뚜렷했다.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제지원은 중단돼야 한다는 견해에 대구.경북 출신 응답자의 40%가 동의한 반면 다른 지역 주민들은 20%대에 머물렀다.

흥미로운 점은 월소득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이 다른 소득 계층에 비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대북 지원과 북한 변화에의 기대가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택적 대중'사이에 넓게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사회 계층별 갈등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념적으로 중도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매우 현실적이고 전략적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지역 갈등, 특히 영.호남 갈등은 한국인들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라기보다 정치권의 권력 갈등의 연속선상에서 제기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치권에서 정파의 이익에 따라 대북정책의 당위성과 목표가 왜곡됨으로써 이 갈등이 국민 갈등으로까지 비화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즉, 영.호남 주민이 북한 전반을 보는 눈에는 별로 차이가 없었으나 유독 '퍼주기' 논란을 일으켰던 '대북 지원' 문제에서만 두 지역의 차이가 확인된 것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정파 간 이익 싸움의 수단으로 전락돼서는 안 된다. 대북정책은 국민이 특정한 대북정책 사안에 대해 단순하게 지지 또는 반대한다는 이유로 지속되거나 중단돼서는 안 된다.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의 맹목적 추종과 여론의 철저한 무시, 양자 모두 정책적 실패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남궁곤 교수<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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