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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모퉁이마다 살아 숨쉬는 '옛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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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대청 사방탁자에는 남자를 위한 쓰개인 탕건.망건 등을 얹어 밋밋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사진위). 젖빛 한지로 싸바른 정갈한 안방에는 벽장에 족두리.화관을 정리하고 횃대에 빛깔 고운 장옷을 걸어 푸근한 실내 분위기를 살렸다(사진아래).

옛 것을 오늘로 가져와 맞춤하게 길들여 쓰기는 어렵다. 전통이 지닌 혼과 미감을 잘 받들면서 그 모양새를 현대 생활에 녹여 넣기가 수월치 않아서다.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안국동 3번지 '아름지기' 한옥 사옥에서 열리는 소담한 전시회가 이 어려운 숙제 풀이 하나를 보여준다.

'전통의 맥-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서'전은 한옥 공간을 어떻게 우리 것으로 오밀조밀 꾸밀 수 있는가를 실험한 본보기다. '아름지기'는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통 생활양식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자는 취지로 2001년 설립된 재단법인.

화랑이나 전시장이 아니라 평소 사무실로 쓰이는 한옥에 마련된 전시회라 관람객의 발길을 더 끈다. 북촌 한옥마을에 자리잡은 아름지기 사옥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시대에 맞게 제대로 지은 한옥으로 이름난 곳. 거죽만 번듯한 게 아니라 내부 꾸밈새까지 제격인 집을 일구고 싶다는 바람이 이번 전시회로 이어졌다.

전시 주제는 '쓰개'다. 옛 사람이 머리에 쓰던 갖가지 모자로 집안 치레를 한 셈이다. 이 분야의 장인 여럿이 출품해 전통 문화를 잇는 구실까지 겸했다.

대청 마루에 갓 하나가 걸려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와 어울린 갓이 단아한 선비 정신을 전해준다. 서반에 단촐하게 놓인 탕건도 운치 있다. 가을 볕이 머무는 대청에 이들 남자 어른이 쓰던 쓰개 두 점이 은근한 무게를 더한다. 사방탁자에 하나씩 얹어놓은 탕건.치포관.망건.총모자도 구성미가 좋다.

도배와 장판을 잘한 안방으로 들어서자 여자 손길이 절로 느껴진다. 벽장에 함초롬하게 올려 정리한 족두리와 화관, 횃대에 걸어놓은 장옷, 방 구석을 장식한 남바위와 조바위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흰 방을 푸근하고 곰살궂은 안방 마님의 처소로 바꾸어 놓는다.

대청을 건너 작은 방에 들어서면 앙증맞은 어린이용 모자가 손님을 반긴다. 청운의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천정을 옥색으로 도배했다는 뜻이 그럴 듯하다. 호랑이 눈이 그려진 호건, 추위를 막아주는 조바위, 색색이 빛나는 댕기 등 아이 꾸밈에도 깊은 뜻을 담았던 선조들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조효숙 경원대 의상학과 교수는 "일상 생활과 밀접한 전통 공예품을 주거공간으로 이끌어내 멋스럽고 실용적인 쓰임을 제안하는 한편 사라져가는 장인을 발굴해 그 맥을 잇도록 꾸렸다"고 밝혔다. 부대행사로 10월 16일 오후 5시 아름지기 사옥에 이웃한 윤보선 고택에서 국악 한마당을 연다. 02-733-8375(www.arumjigi.org).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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