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육상 2관왕 오른 홍석만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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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를 휘감고 관중의 환호에 답하는 ‘아름다운 청년’ 홍석만.

제주도의 평범한 휠체어 장애인이 '큰일'을 냈다. 휠체어 육상에서 금메달 두 개, 은메달 한 개 등 모두 세 개의 메달을 따고 세계 기록도 깼다.

영광의 주인공은 홍석만(29.제주시 도련동)씨. 그는 추석 연휴에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육상 남자 휠체어 부문(T53) 100m,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지난 27일(현지시간) 열린 200m에선 26초31로 세계기록을 세웠다. 이는 자신이 예선에서 세웠던 26초48을 깬 것이다. 25일엔 100m에서 15초04로 금메달을 땄다. 23일에도 400m에서 1위에 불과 0.01초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휠체어 레이싱은 장애인 올림픽의 꽃으로 불린다. 이 중 박진감 넘치는 단거리 경주의 인기가 높다. T53.T54급 장애 경기가 있는데 이 중 T53급 출전 선수의 장애가 심하다.

그는 당초 메달이 크게 기대되지 않았던 선수. 그런 그가 2관왕을 차지하면서 이번 한국 선수단의 스타로 우뚝 섰다. 홍 선수는 성격이 밝고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선수단에서 '얼짱'으로 통한다. 400m에서 간발의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렀을 때도 "100m, 200m가 남았다"며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탔다. 중 1, 2년 때 경기도 안산의 재활원에 다닌 것을 제외하면 일반 학교에 다녔다. "친구들이 장애를 느끼지 않도록 많이 도와줬다"고 그는 회고했다.

제주산업정보대학에서 사무자동화를 전공해 전산 분야에 주 특기를 갖고 있다. 지금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장애인복지관 정보화교육센터에서 전산 교사로 일한다.

그의 금메달에는 어머니 양정자(58)씨의 눈물이 배어 있다. 양씨는 "집에만 있으면 인생에 실패할 수도 있다"며 아들을 밖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이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래서 육상도 시작하게 됐다. 아버지 상림(61)씨는 1996년 다리를 다쳐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가 청소 등의 일을 하며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홍 선수는 "어머니의 독려 때문에 힘을 얻었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게 됐다"면서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 어머니의 얼굴이 앞을 가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전화로 금메달 소식을 전한 아들에게 "잘했다"는 말만 하고 계속 울었다고 한다.

"금메달을 딴 것도 좋지만 그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게 정말 좋았습니다."

홍 선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장애가 있을 경우 자칫하다간 우울증에 빠질 수 있는데 운동을 하면 성취의 기쁨을 얻게 돼 장애를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다른 장애인에게 조언했다. 홍 선수는 올해 말 미국 일리노이대로 유학을 떠나 전문적인 훈련 기법을 배워 올 계획이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는 후배들을 훌륭하게 길러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테네=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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