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으려고 하면 먼저 바닥이 보여요
바닥이 받쳐주는 구두의 아픈 몸
아무 말 없이
누구든 신고 떠나는 무저항주의자
검은 혀로 생을 맛보는
질긴 고통의 탐식가가
바닥을 한쪽씩 지워가는 동안
나는 쪽배에 얹혀 울면서
탐험을 계속하지요
바라볼 때보다
세상은 항상 길었어요
휘청휘청 세상 모서리에 찍히며
- 이사라(47) '구두와 함께' 중
구두는 무저항주의자라고? 하긴 구두의 집단이기주의, 구두의 항쟁을 우리는 본 일이 없지, 말없이 무거운 몸을 짐지고 아무리 먼 길도 마다않고 따라주는 구두의 고마움을 우리는 깨달은 적이 없지, 더구나 거친 땅바닥에 살을 찢기는 그 아픔까지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날마다 신고 벗는 구두의 바닥을 보며 그 검은 혀가 핥아가는 생을 맛보는 이사라의 감성이 치밀하게 구두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을 꿰뚫고 있다.
이근배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