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보면 여성가치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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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누구나 즐겨 찾는' (77년) '단정한 여학생의 토털 패션' (82년)에서 '내가 원하는 나를 입는다' (94년) '나는 나대로 사는 법이 있다' (97년)까지.

광고에 등장한 여성들은 20여년 사이 많은 변화를 보인다.

동그란 얼굴에 순한 표정으로 착하고 예쁘게, 전통적인 미를 대표하던 여성 모델들은 이제 보다 강렬한 눈빛으로 나만의 개성, 나만의 생활을 부르짖는다.

때로는 흩어진 머리에 괴상한 화장, 아슬아슬한 섹시함도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를 가리켜 여성들의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광고전략의 변화라고 이름 붙였다.

명지대학교 전양진 교수는 자신의 논문 '한국여성의 가치관 변화에 관한 연구 : 화장품과 의류상품 광고를 중심으로' 에서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사회가 안정돼 감에 따라 기존의 가치관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고 말한다.

그는 또 "계층간 이동의 기회가 많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과거엔 경쟁적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여성상이나 소속감.전통성을 강조한 여성상이 광고에 많이 등장했지만,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는 요즘엔 자아를 탐구하고 개성을 표출하는 여성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 분석했다.

이 논문은 태평양장학문화재단 선정 99년 여성생활관련 우수논문으로 선정됐다.

'뽐내세요, 멋있어요' (77년) '시선 받는 봄나들이, 당신은 돋보일 수 있습니다' (86년)등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광고가 요즘은 다소 생경하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

이젠 '여자를 벗고 나를 찾는다' (94년) '자유롭게 떠나는 금요일, 금요일 같은 옷' (97년)에서처럼 타인으로부터, 기존의 관습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광고문구가 더 익숙하다.

이처럼 개성과 자아를 강조하는 경향은 1987년에서 1991년을 기점으로 두드러진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의 선진국들이 60년대말과 7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이같은 자아중심적 가치관은 제품에 따라 표현방식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화장품의 경우 사실정보 제공과 제품의 효능설명이 중시 더욱 중시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따라서 '와인성분 함유' '고기능 화장품' 등 구체적인 성분과 기능을 강조하는 광고가 단순한 이미지 광고보다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초화장품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화장품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의류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정확한 제품정보보다 감성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쪽이 주류를 이룬다. 구두나 핸드백 등 잡화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의류나 화장품에 비해 실용적인 가치보다 최고를 강조하는 브랜드 이미지 전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상의 멋과 품위' (91년) '명품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90년)등 전통과 명성을 강조하는 광고가 유난히 많은 분야. 이는 구두와 각종 장신구들이 실용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명성과 성공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령별로 봤을 때 10대와 20대를 주고객으로 하는 광고의 경우 기능성을 강조하는 광고보다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전교수는 "이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요즘의 10대에게는 성공해야겠다거나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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