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제 그만] 1. 참사 부르는 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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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건설한 지 30년 된 경부고속도로의 추풍령구간이 위험하다는 걸 한국도로공사가 몰랐는가.

1995년 도로공사는 '제한속도를 지켜도 위험한 고속도로상 안전사각(死角)지대 80곳' 을 파악해 발표한 바 있다.

도공은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전체 길이의 10%, 남해고속도로는 16%, 호남고속도로도 7%가 도로 구조상 결함을 갖고 있어 사고위험이 상존한다" 며 개선대책도 발표했었다.

건설 당시 교통 흐름보다 배수(排水)에 치중해 고속도로를 건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사가 난 추풍령 구간도 당시 '급(急)구배.급커브에 중앙분리대측 배수 불량으로 매년 30여건의 사고가 나는 위험구간' 으로 지적됐다.

도공은 미끄럼방지 포장·제한속도 강화(시속 80㎞) 등 대책을 제시했다. 또 "96년부터 추풍령휴게소 전·후 구간 선형(線形)을 개량하겠다" 는 발표도 했다.

그러나 이 구간은 아직도 그대로다. 도공 관계자는 "선형 개량을 위해 설계 중" 이라고 답변한다. 게다가 사고 구간은 미끄럼방지 포장마저 제대로 관리를 안해 빗길에선 오히려 미끄럼틀이 됐을 정도다. 이처럼 설계나 구조, 관리가 잘못돼 '사람을 잡는' 도로들이 전국에 즐비하다.

도공이 95년 개량대책을 발표했던 고속도로 31곳 가운데 대부분이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고속도로 10㎞당 매년 3~4명씩 사망하는 불행이 계속되는 데도 도공은 기존 도로 개량을 소홀히한다는 지적이다.

국도(國道)는 더하다. 지난 한해에 3천7백여명이 국도상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마을과 인접한 4차선 국도는 주민들에겐 너무 억울한 '살인 도로' 다. 충북 청원군의 경우 97년에 국도에서만 1백여명이 사망했다.

도로시설은 '평균 운전자가 보통 수준의 주의력.운전실력으로 운전할 경우 안전' 하도록 설계·건설·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로엔 '사고 잦은 곳' 이 7천여곳이나 된다.

시속 1백㎞로 달리려면 가시거리가 최소 2백m는 넘어야 하고, 그러려면 곡선 반경이 추월선은 1천m, 주행선은 7백m는 돼야 한다.

그러나 설계기준은 4백60m다. 추풍령 사고구간도 6백m밖에 안돼 운전자들은 앞에서 사고가 난 걸 뻔히 보면서도 제동을 못했다.

또 내리막 경사의 '제한길이' 도 규정해야 한다. 내리막에서는 가속탄력을 받기 때문에 내리막길이가 3% 경사에서는 7백50m, 5%에서는 4백m 미만이어야 한다.

국도에선 가로수가 시야를 가리고, 차가 서서는 안되는 내리막에 횡단보도·버스정거장이 있다.

이제라도 '도로 안전진단 제도' 를 도입하자. 개통 후 3~5년마다 사고가 잦은 현장을 찾아 원인을 밝히고 조치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음성직 수석전문위원·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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