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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기 왕위전] 이세돌-서봉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절묘한 유인술에 넋 잃은 白 대마

제5보 (116~145)〓흑▲로 젖히자 백의 생사는 경각에 달린 느낌이다.

가만히 보니 완벽한 사지(死地)다. 좌측에서부터 뻗어나온 흑 대마를 추격하고 또 추격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사방이 틀어막힌 함정에 빠져들고 말았다.

李3단은 얼굴을 붉히며 한탄하다가 116에 젖혀 혈로를 뚫으려 했으나 徐9단은 이미 철통같은 방어망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바로 117로 끊은 다음 125에 두점으로 키워죽이는 수. 이렇게 눈을 없앤 다음 127에 한칸 뛰는 수. 이 세수가 백의 희망을 꺾어버린 준엄한 수순이었다.

힘이 장사인 이세돌3단이다. 혈기는 넘치고 무용은 뛰어나 그 명성은 이미 사해에 떨치고 있다. 천하의 조훈현9단을 전투로 꺾어버린 뒤로는 정면승부로는 당적할 자가 없다는 얘기마저 들려온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한 자라도 준비하고 대비한 자에게는 이기기 어렵다.

바둑은 더구나 전술의 게임. 徐9단은 한국기원 기사실에서 이세돌의 기보를 늘어놓으며 이세돌의 약점을 찾기에 골몰했다.

평소엔 "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허허 웃으며 약세를 드러내는 徐9단이지만 사실 그는 이세돌과의 일전을 차분히 준비해왔던 것.

반면 李3단은 서봉수9단을 만날 때마다 이겨 이미 4전4승을 올리고 있었던지라 약간은 방심했다. 그의 마음은 서봉수를 넘어 이미 이창호9단에게로 가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李3단의 착수가 한없이 느려지고 있다. 徐9단의 유인전술은 절묘했고 매복은 완벽해 백 대마는 헤어날 길이 없다.

128, 130으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해 보지만 백의 수는 짧고 흑의 수는 길어 도저히 수상전이 안된다.

144에 치중하자 徐9단은 늘어진 패마저 염려해 145에 두었고 이 수를 보자 李3단은 침울하게 돌을 거뒀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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