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잘못에 업주까지 무조건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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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A건설은 지난 8월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본사 부장과 현장소장이 발주자의 승낙을 받지 않고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준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법원의 대리인이나 종업원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처벌될 때는 그 법인도 벌금형으로 처벌한다’는 양벌규정이 적용된 것이다. 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해 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이처럼 전국 법원에서 헌재에 낸 양벌규정 관련 위헌 제청은 올 들어 10건이 넘는다. 위헌제청을 한 판사들은 “양벌규정은 책임 없는 자를 처벌해선 안 된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란 헌재 결정이 다른 법률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부산·울산지법 등의 상당수 판사는 “유사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이 나온 점을 참작한다”며 선고유예 판결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선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양벌규정은 예외적인 법 규정이므로 이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피고인이 종업원들의 위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선고유예가 법인에 대해서는 형벌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며 1심의 결론을 뒤집고 벌금형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혼선이 생긴 원인은 법률의 위헌이 분명한 데도 고쳐지지 않는 데 있다. 지금까지 헌재는 8건의 위헌결정을 통해 양벌규정의 위헌성을 거듭해서 확인했다. 헌재 관계자는 “나머지 양벌규정들도 대부분 비슷한 유형이란 점에서 위헌 선언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당 법이 개정되거나 위헌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살아 있는 법률’이다. 일선 검찰에선 처벌 필요성이 작다는 이유를 내세워 기소유예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현행 법에 따라 기소하는 사례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이상철 공판송무과장은 “사건 처리에 관한 지침을 만들 계획이지만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검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권태형 형사공보판사는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경우 판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선고유예를 하거나 위헌제청을 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판사는 “물론 법률이 개정된 경우에도 이미 재판에 넘겨졌다면 구법(행위시 법)을 적용하느냐, 신법을 적용하느냐는 논란이 남지만 문제될 사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권석천·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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