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섬의 규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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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들은 지구상에서 주름이 가장 험하게 잡힌 중국 오지에서 강 24개와 1천개 이상의 산을 넘어 6천마일 넘는 거리를 행군하고, 싸우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면서 돌파하여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

미국 언론인 해리슨 솔즈베리는 1934년부터 1년여에 걸친 중국 공산군의 장정(長征)을 다룬 저서 '대장정(The Long March)' 에서 굳이 경탄을 숨기지 않았다.

"이것은 유대인의 출애굽기, 한니발의 알프스산맥 횡단과 유사하다. 서부의 험산과 얼어붙은 초원을 횡단해 간 미국인들의 거대한 마차행렬과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비교도 적합하지는 않다" 고 솔즈베리는 표현했다.

당시 홍군(紅軍)이 행군한 코스는 런던에서 도쿄(東京)까지와 맞먹는 거리인 데다 대부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오지였다. 중국 서부지역의 이같은 형편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생물학에 '섬의 규칙' 이란 게 있다. 같은 종(種)의 동물이라도 장기간 섬에 고립되면 몸집이 큰 동물은 작아지고 작은 동물은 커지는, 덩치의 평준화 현상이다.

포식자(捕食者).먹이 관계와 체구유지 문제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의 동물학자 모토카와 다쓰오(本川達雄)는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이라는 재미있는 저서에서 섬의 규칙을 미국.일본 사회에 대입했다.

미국 체류 중 그가 주목한 것은 대학(듀크대) 캠퍼스에는 엄청난 거물급 학자들이 즐비하지만 캠퍼스를 벗어나 '보통 미국 사람' 을 접하면 그 수준이 일본인에 비해 한결 처진다는 점이었다.

섬나라라는 환경에서는 엘리트의 크기가 작아져 걸출한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거꾸로 작은 사람, 즉 서민의 크기는 커져 평균적인 지적 수준은 높다. 섬의 규칙은 사람에게도 들어맞는 모양' 이라고 모토카와는 추측했다.

남한이 9만9천4백㎢인 데 비해 중국은 무려 9백60만㎢. 땅덩어리가 크면 인물도 들쭉날쭉이겠지만 국토의 균형발전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달 12일자 뉴스위크 한국판은 중국이 지금 서부 오지를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서부개척시대' 열기가 한창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 땅은 난개발.과잉개발로 몸살을 앓고, 고만고만해 보이는 사람들은 밤낮없이 편갈려 싸우기 바쁘다. 우리는 대륙형(型)인가 섬나라형인가.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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