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억에 발목 잡힌 예산 292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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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조원에 달하는 새해 예산 처리가 고작 800억원에 발목이 잡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27일 오후 김형오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4대 강 사업 예산 협상을 벌였지만 회담은 50여 분 만에 결렬됐다.

이 자리에서 이 원내대표는 “수자원공사의 이자지원비 800억원은 이번에 처리하지 말고 내년 2월 추경예산 편성 때 심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보의 높이를 당초 5.3~11.2m에서 3m로 낮추고, 개수도 16개에서 8개로 감축하자는 타협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안 원내대표는 “4대 강 사업의 본질을 훼손하는 예산 삭감은 인정할 수 없으며, 내년 2월 추경 때 심사하자는 것은 사실상 4대 강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수용불가를 선언했다.

수공 지원비 800억원이 전체 예산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 것은 이 돈이 4대 강 사업의 방아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4대 강 사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보 건설’은 수공이 담당하는데 수공의 4대 강 사업비(3조2000억원) 자체는 국회 심의가 필요없다. 그러나 수공은 재정 능력이 없어 채권 발행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해야 할 처지다. 이 경우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800억원)은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에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 800억원 삭감을 지렛대로 삼아 수공의 보 건설 사업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협상이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자 여야는 이제 정면 충돌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안 원내대표는 “28일 오후께면 당의 독자 예산수정안이 확정될 것 같다”며 “민주당도 그때쯤 독자안을 발표한다고 하니 서로의 안을 가지고 다시 협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독자안을 확정했다는 것은 협상에 기대를 걸기보단 강행처리에 무게를 두는 수순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당 핵심 관계자는 “ 독자안이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는 대로 조속히 예결위에서 통과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준 대표와 정운찬 총리도 28일 조찬 회동을 하고 예산안 처리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도 28일부터 예결위 회의장의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어서 국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정하·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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