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학술용어를 쉬운 토박이말로 바꾼 공으로 1985년 한글학회 공로상을, 지난해는 우리말 사전을 펴내는데 힘썼다며 외솔상을 수상한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이상섭(63)교수.
연세 한국어사전 편찬실장을 맡고있던 98년에는 국내 최초의 자연언어 사전인 '연세 한국어사전' 을 펴내기도 했다.
이교수는 한국 영문학 비평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영문학자. 그런 그에게 "비평사는 두고 왜 그리 국어에 관심을 두느냐" 는 주위의 핀잔도 없지않지만 이미 우리 글에 쏠린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피난시절 연대 국문과에 다녔던 큰 형의 영향이 컸죠. 그때부터 국어사전을 볼 때마다 제 마음엔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30년대 나온 조선어학회의 '조선어사전' 과 크게 다른 점이 없더군요. 어떤 사전은 북한사전을 베끼기도 했구요. "
그의 생애 최대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사전만들기를 결심한 것은 공교롭게 한글학회 상을 받은 85년. 이듬해 그는 '연세대 사전편찬회' 를 조직, 실제 작업에 착수한다.
"사전편찬학이 발달한 영국에서 수십권의 책을 주문하고 꼼꼼하게 읽었어요. 사전편찬은 처음이니 공부를 했어야죠. 10여년간 열시간 넘게 책을 본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습니다. "
이 과정에서 '말뭉치(corpus)' 이론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재정립한 것은 국어학계의 큰 공으로 꼽힌다.
'말뭉치' 란 컴퓨터로 검색이 가능하도록 가공한 언어자료. 89년부터 신문.잡지.소설.수필의 원문을 엄선.입력해 93년에는 20만권 분량(4천3백만 어절)의 말뭉치를 모았고 이 작업을 거듭해 '연세 한국어사전' 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사전은 예문을 일상 쓰이는 말에서 가져와 우리말의 쓰임새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교수는 사전 편찬을 하며 얻은 덤이 있다. 두 아들이 연대 국문과를 졸업해 한국어사전 편찬실에 근무하던 연구원들과 결혼을 한 것. 같은 과를 나온 장남 기황씨까지 이제 이교수의 집안에는 같은 길을 가는 '동지' 가 3명이나 생겼다.
이교수는 앞으로 말뭉치의 입력범위를 북한말로 확대할 계획. 남.북한말 모두를 아우르는 사전을 만들어 민족의 동질화를 돕겠다는 더 큰 포부 때문이다.
이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