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삼풍'은 치유되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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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월 29일은 삼풍사고가 난 지 만 5년이 되는 날이다.

먼저 건설기술자의 한 사람으로서 5백1명의 희생자와 9백37명의 부상자에게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린다.

삼풍사고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후진적인 사고로서 백주에 백화점이 붕괴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돌이키기도 싫은 끔찍한 사고였다.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삼풍은 치유되었는가□ 삼풍사고에서 발견되었던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은 제거되었고 제2의 삼풍은 영원히 제거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빚을 갚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삼풍사고는 부실설계.부실시공에 의한 품질사고로서 사고원인이 매우 복합적이다.

설계.시공부실뿐만 아니라 유지관리의 부실, 기술을 무시한 건축주의 독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와 뇌물관행을 기본으로 한 건설업계의 비리 등 총체적인 부실의 결核?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사고원인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잔여 건물을 서둘러 허물어 버려서, 보고서다운 보고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 일본 고베(神戶)의 대지진은 철저한 조사 연구를 통해 일본 전체의 건설 기술과 시스템을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는 종합백서를 발간하여 일반에게 공개한 것을 보면 사안에 대한 인식수준과 대처수준의 차이를 느껴 부끄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삼풍은 잊혀지고 있고 잊혀가고 있다. 우리는 삼풍의 교훈으로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삼풍사고 이후 언론.정부.정당.각종 단체등이 무수한 대책을 내놓고 야단 법석을 떨었건만 무엇을 어떻게 개선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 신문 스크랩을 보면 시인.작가.저명인사들이 수많은 절규를 쏟아내고 대책과 제언을 했건만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관련당국의 '건설제도 개혁단' '부실공사 방지대책 특별기구' 등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필자는 부실공사의 치유는 우리 사회의 선진화와 건설산업의 선진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며, 우리 건설산업의 후진성 원인을 ▶법과 제도의 문제점▶국제화 부족▶소프트웨어부문의 열세로 파악한다.

먼저 법과 제도의 문제점은 가장 기본이 되는 시스템인 법과 제도가 건설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각종 비리와 부정의 온상을 제공하고 있다.

지켜지지도 않고, 지킬 수도 없는 1백여개의 건설관련법을 과감히 통폐합하고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제하려고 드는 법 만능주의를 탈피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국제화 부족 문제는 국내 건설산업 전반에 걸쳐서 국제화가 안되었고 선진국의 우수한 노하우와 기술이 접목되지 못했다.

따라서 외국업체의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며 각종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세번째로는 설계.엔지니어링.건설사업을 관리하는 기술(CM)등이 국제적인 수준에 비해 너무나 뒤져 있다.

소프트웨어가 우수하면 하드웨어는 따라가게 마련이다. 정부는 건설 소프트기술의 발전.진흥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건축(건설)은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건설은 그 시대의 산물이고 훌륭한 건축주가 훌륭한 건축물을 만든다.

건설이 인간의 의식주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주요 부분이라고 할 때, 우리 사회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건설문제를 접근할 때 우리는 언젠가 선진 대열에 동참할 날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건설관련자의 의식개혁운동이나 양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조적인 제도 개혁과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 길은 매우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우리 건설산업이 거듭나는 길만이 삼풍을 치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삼풍사고 5주기를 맞이하여 삼풍 희생자의 넋과 부상자를 위로하고 우리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종훈 <한미건설기술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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