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의 포퓰리즘 노동법안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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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의원 11명이 어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8일 환노위에 제출된 당 차원의 개정안과는 별개의 의원입법안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표심(票心)에 개혁을 파는 우리 정치의 한심한 실상이 드러난다. 한나라당 안도 노사정 합의마저 무시한 후퇴법안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핵심 쟁점 중 하나인 무급전임제 도입 방안이 그것이다. 노사정은 필수노조 활동만을 유급으로 인정하자고 합의한 데 비해 한나라당 안은 통상적인 노조관리 업무까지 포함시켰다. 사실상 무노동 무임금 제도 도입의 취지를 무산시켜 버린 것이다.

그런데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의원입법안은 아예 유급 전임제를 법으로 인정해 놓았다. 심지어 당론에서조차 흔들지 않았던 복수노조 유예 원칙까지 허물어 버렸다.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일정 수의 유급 전임자를 둘 수 있게 하고,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급전임자를 유지하고, 복수노조를 즉각 허용하라는 노동계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발의한 의원들은 ‘영세 중소기업 노조를 배려했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를 내놓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런 식이라면 그동안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말은 왜 했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재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노조법을 계속 후퇴시키고 있는 이유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주요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을 의식한 게 뻔하다. 하지만 집권여당이 기업 생산성과 국가 이미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안을 놓고 포퓰리즘에 빠지는 것은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국가대계를 도모하는 책임정당이라면 한 치 앞의 선거에 연연하기보다는 국가 장래를 내다보는 대승적 견지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당자자 간 합의인 노사정 안을 따르는 것임을 거듭 지적해 왔다. 이제 여야가 정한 법안 처리 시한(28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포퓰리즘에 빠져 한국노총의 2중대 역할을 계속할 것인지,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개혁안을 이끌어 내는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