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홈런왕과 다승왕…누가 더 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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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홈런왕과 에이스.

만약 내가 프로야구 감독이라면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을 모두 섞어 놓고 드래프트할 때 누구를 가장 먼저 뽑을까. 이승엽.정민태, 아니면 이병규 또는 진필중?

홈런은 '야구의 꽃' 이다. 홈런왕은 수많은 관중을 몰고 다닌다. 관중은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새미 소사(시카고 컵스)를 보기 위해 몰려들고 TV 광고주와 아리따운 아가씨도 홈런왕에게 유혹의 미소를 보낸다.

최고 스타도 홈런왕의 차지가 된다. 이승엽(삼성)이나 일본의 마쓰이 히데키처럼 이들은 수많은 팬들을 확보해 구단의 가장 큰 재산이다.

그러나 우승을 하고 싶다면 홈런왕보다는 다승왕, 에이스가 필요한 것이 야구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왕은 '캐딜락(부의 상징)' 이지만 에이스는 '챔피언 반지' 로 통한다. '에이스 중의 에이스' 로 불리는 다승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실속을 차려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7차례 벌어진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왕 소속팀은 네번, 다승왕 팀은 일곱번 정상에 올랐다.

또 지난 2년간 다승 2위 정민태(현대)와 정민철(한화)이 각각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 놓았던 사실을 보면 에이스가 우승에 기여하는 비율이 홈런왕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홈런왕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챙긴 것은 이미 20년 전의 일이다. 1980년 마이크 슈미트가 속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 홈런왕이 팀을 우승으로 이끈 적은 아직까지 없다.

월드시리즈의 단골손님 뉴욕 양키스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홈런타자는 선뜻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로저 클레멘스.데이비드 콘.올란도 에르난데스(이상 양키스)와 그레그 매덕스.톰 글래빈.존 스몰츠(이상 브레이브스) 등의 화려한 투수진이 돋보인다.

지난해 마크 맥과이어가 홈런을 때린 56경기에서 카디널스는 24승32패로 승률 0.429를 기록했다. 이긴 경기보다 패한 경기가 더 많았다.

그런데도 팬들은 홈런왕을 보러 간다. 에이스는 기껏 닷새에 한번 등판해 갈증을 풀어주지만 홈런왕은 하루에 네다섯번씩 짜릿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침체에 빠졌던 메이저리그를 부활시킨 것은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왕 경쟁이었고 국내 프로야구를 되살린 것도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 행진이었다.

즐길 것인가, 이길 것인가. 팬이냐, 우승이냐. 홈런왕과 에이스의 빛과 그림자다.

이태일 기자

▶홈런왕 한국시리즈 우승팀

1986 해태 김봉연(21개)

1988 해태 김성한(30개)

1989 해태 김성한(26개)

1995 OB 김상호(25개)

▶다승왕팀 한국시리즈 우승팀

1982 OB 박철순(24승)

1984 롯데 최동원(27승)

1986 해태 선동열(24승)

1989 해태 선동열(21승)

1991 해태 선동열(19승)

1993 해태 조계현(17승)

1994 LG 이상훈(18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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