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나흘째…교수들 마저 사퇴 응급실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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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퇴한 23일 일부 대형 병원들에서는 응급실 진료가 마비되는 등 심각한 의료 공백이 빚어졌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환자들은 의사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울분을 터뜨렸고 남은 의사들은 몰려드는 환자들로 기진맥진했다.

일부 병원에선 교수직 사퇴의 표시로 가운을 벗은 교수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응급실 진료에 나서기도 했다.

이날 낮 12시를 기해 응급의학과 1명을 제외하고 교수들이 모두 철수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한동안 진료가 거의 마비됐다. 교수 한명이 50여명의 응급환자를 돌보는 상황이 계속돼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고혈압으로 인한 심한 현기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은 주부 高모(53)씨는 "두시간이 넘도록 의사 얼굴조차 못봤다" 며 "다른 병원에 가려고 해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 갈 것 아니냐" 고 하소연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병원 내에서 정부 대책과 폐업 동참 여부 등을 놓고 회의를 벌이던 교수들은 오후 4시부터 응급실에 5~6명의 의료진을 더 투입, 뒤늦게 사태수습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은 이날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응급실을 떠나자 보직교수 6명이 긴급 투입됐다. 그러나 전날까지 15명이던 의사가 대폭 줄어 진료대기 시간이 평소보다 1시간 이상 길어졌다.

게다가 보직교수들은 응급실 진료를 떠난지 오래된 탓에 응급실 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당황해하자 병원측은 응급의학과 전공의 2명을 긴급호출해 진료를 돕게 하기도 했다.

류머티즘 환자인 金모(45)씨는 "진료에 나선 나이든 교수들이 계속 진료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며 불안해 했다.

고대 구로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 등도 교수들의 사퇴로 보직교수들이 긴급 투입돼 진료에 나서고 있으나 중환자의 경우 진료가 어려워 인근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교수 1백80여명이 사퇴한 한양대병원의 경우 9명의 보직교수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사복을 입고 자원봉사 형태로 진료를 돕는 의사 3명이 가세해 응급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 사직서를 제출한 일부 교수들이 흰 가운을 벗은 채 응급실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기도 했다.

신경외과 金광명(56)과장은 "정부의 대책이 너무나 미흡해 실망스럽다" 면서도 "비록 사직서를 내고 흰 가운을 벗고는 있지만 환자들은 끝까지 보살필 것" 이라고 말했다.

부산 고신의료원의 경우 오후 1시 의사들이 응급실에서 모두 철수했다. 인제대 부속 부산백병원도 낮 12시부터 의사 3명이 남아 기존 응급환자만 진료하며 신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대구 경북대병원.영남대의료원.계명대 동산의료원 등은 일부 보직교수가 위급환자만 받았으며 울산대병원의 경우 일부 간부급 교수가 위급 환자만 진료했고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은 인근 보건소로 안내하거나 되돌려보냈다.

전북대병원의 경우 의대 교수 1백2명이 사직서를 냈으나 이중 27명이 9명씩 3교대로 진료를 계속했다. 원광대병원도 교수 15명이 5명씩 3교대로 진찰했다.

사회부.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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