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홍윤기 '장미꽃은'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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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의 도톰한 손이다, 손, 손

무너지지 말아야 할 사랑을 위하여

양심을 눈물로 시늉하는 몇방울의 고백

하지만 나도 별 수없이 남 속이면서

한가지씩 세상을 배웠단다

장마라 하여 모두 예쁜 것은 아니지

다만 꽃이라는 말은 향기롭구나

그대여 숨기지 마라

어찌 기침소리를 두손으로 막을 수 있을까

가시돋힌 또 하나의 배반을 손에 움켜쥐고

나는 오늘 바람 속을 나뒹군다.

- 홍윤기(67) '장미꽃은' 중

꽃을 보고 신의 손이란다. 손으로 보면 손이고, 얼굴로 보면 얼굴인 것. 장미는 가시가 있어서 더 향기가 나고 가시가 있어서 더 시에 자주 오르내리는가.

꽃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데 사람은 꽃 앞에서 남을 속이는 것이 부끄럽다.

장미의 이율배반을 두고 이 시는 몇방울 사랑의 이율배반을 떨구고 있다.

마음의 가시를 뽑지 못하는 것을.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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