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돼도 파행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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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주일 남짓 남겨놓은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될지 불투명하다.

지난 20일부터 병의원 폐업과 파업에 들어간 의사들은 의약분업 시행에 앞서 ▶의료법 등 다른 법률과의 상충▶약사의 임의조제 금지방안 미흡▶병의원 재고약품 처리▶2만명에 이르는 직원 감축 등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7월1일 일단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3개월 후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선보완 후시행’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의사들이 정부의 단호한 입장과 폐업에 따른 환자 사망 사고로 들끓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폐업을 철회하더라도 의약분업에 대한 불만 자체가 가라앉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때문에 의약분업이 예정대로 시행되더라도 의사들이 약국에서 구비하기 어렵거나 값 비싼 약을 처방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파행적인 의약분업은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병의원 폐업사태를 조기에 끝내기 위해 의료계에 더 많이 양보할 경우 이번에는 약사들의 반발을 불러 의약분업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동안 묵묵히 의약분업을 준비해온 약사들은 이미 지난 18일 정부가 의료계 폐업 관련 대책에서 주사제의 예외범위를 대폭 확대하자 한꺼번에 불만이 터뜨렸다.

약사들은 “기본 원칙을 어긴 의약분업에는 참가하지 말자”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으며,오는 26일 이사회에서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19일 의약분업을 당장 시행하기 보다는 광역 시·도 가운데 1∼2개 지역을 선정해 6개월간 시범실시한 다음 내년 1월부터 시행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의료계의 협조없이 의약분업이 제자리를 잡을 수 없으므로 사실상 6개월 연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을 연기하려면 당장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더욱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의료계가 정부가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며 “원칙을 지켜가면서 책임있게 대처하라”고 지시한 만큼 현재로서는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여기에 약품과 자동포장기 구입·내부시설 개조 등에 적게는 평균 2천만원 정도 투자한 약사들도 분업이 연기된다면 정부를 상대로 2조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지난 1982∼85년 전남 목포시에서 실시됐던 의약분업 시범사업 당시 인근 지역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는 바람에 실패했던 경험 때문에 그동안 의료계의 시범실시 요구를 물리쳐온 복지부가 의약분업 연기나 시범사업 실시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시민단체들도 의약분업안은 의료계와 약업계,시민단체 등 3자가 합의한 것인 만큼 의료계의 요구에 밀려 연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의·약·정 3자가 머리를 맞대고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현재로서는 의약분업을 보완하거나,연기하거나,강행하거나 어떤 경우든 국민건강을 위한 의약분업이 순조롭게 시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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