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프로젝트 중간점검] 1. 우린 그 프로젝트 잘 몰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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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류가 있는 한 섬유산업은 영원하다. 섬유도시 대구가 그 영원함을 잡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바로 7천억원을 투입하는 '밀라노프로젝트' 다.

값싼 원단을 첨단소재로 바꾸고, 나아가 이를 패션산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아직은 요란한 구호만큼 실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밀라노프로젝트의 현주소와 보완점 등을 네차례로 나눠 진단한다.

1998년 9월9일 대구시 서구 중리동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박태영(朴泰榮)산업자원부 장관이 대구 섬유산업의 흐름을 바꿔놓을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는 대구 섬유산업을 키우기 위해 99년부터 5년간 6천8백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바로 '밀라노프로젝트' (Milano Project)였다.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정말 가능할까" 라는 등 시민.업계의 반응이 엇갈렸다. 밀라노프로젝트가 가동된 지 1년반.

대구시청 2층에 마련된 밀라로프로젝트 상황실은 벽면을 가득 채운 상황판이 사업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신제품개발센터 등 각종 건물도 쑥쑥 올라가고 있다.

대구시 조주현(曺珠鉉)섬유진흥과장은 "모든 게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고 말한다.

曺과장은 "대구시와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하는 사업" 이라며 "일부는 계획보다 빨리 마무리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와 시민들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대구시 달서구의 N업체.

임직(賃織)업체서 원단을 받아 동남아 등지로 수출하는 이 업체는 최근들어 바이어의 주문이 끊겼다.

"밀라노프로젝트요. 자금난 때문에 대출을 받으려 해도 담보가 없으면 안돼요. " 이 업체 박정도(33)기획실장은 "밀라노프로젝트가 우리완 전혀 상관없는 일" 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구 섬유업계의 주력인 화섬업체들은 "직물을 수입하던 중국이 경쟁국으로 등장해 위기를 맞았다" 며 "제 앞가림하기 바쁜 마당에 밀라노프로젝트가 무슨 소용이냐" 며 냉소적이다.

밀라노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혜자인 염색.패션.봉제업계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염색업체의 기술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염색기술연구소가 각종 기술개발에 들어갔고, 패션산업의 '메카' 가 될 패션어패럴밸리 조성도 올 연말쯤 시작된다. 하지만 염색업체는 여전히 낮은 가공료가 염색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제직업체가 염색가공료를 깍고 나오는 데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패션어패럴밸리는 여러 면에서 주목거리다. 과연 패션산업을 육성할 견인차가 될 수 있을 지, 각국의 바이어를 불러모으는 장소가 될 지 관련업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패션업계는 그나마 입주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봉제업계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구경북봉제조합 임원상(林源相)이사장은 "조합원들이 수출과 영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재는 단계" 라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잘 모르겠는데요. " "그러다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닙니까. "

취재과정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밀라노프로젝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구시 배광식(裵珖植)경제산업국장은 "업계.시민의 참여가 성패를 결정한다" 는 말을 되풀이 했다.

정기환.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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