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상의료대책 속수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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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료계가 집단폐업에 돌입한 20일 정부의 비상의료대책이 원활하게 가동되지 않아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보건복지부가 19일 발표한 비상진료 대책기관에 포함된 국.공립병원 중 국립의료원.경찰병원.원자력병원.보훈병원.보라매병원 등 5곳의 전공의들이 폐업에 동참,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외래 환자의 진료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또 대한적십자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 전화는 오전부터 문을 연 병.의원의 위치를 묻는 환자들의 전화가 폭주했지만 60개 회선에 전화를 받는 사람이 14명에 불과해 몰려드는 문의를 감당하지 못했다.

응급의료정보센터 高진남 구호팀장은 "사람이 부족해 통화성공률이 절반을 조금 넘는다" 고 밝혔다.

미처 응답하지 못한 전화는 자동응답서비스(ARS)로 연결된 뒤 1분30초가 지나면 끊어졌다.

심근경색으로 고생하는 아버지(56)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전화를 걸었다는 朴모(31.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1시간 넘게 전화를 걸다 겨우 연결이 됐다. 증상을 설명하니 무조건 '빨리 응급실로 옮기라' 는 말만 해 답답했다" 고 밝혔다.

서울시 비상진료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진료가능한 병.의원의 소재.연락처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응급 대처에 허점을 드러냈다.

서울 시내 각 구 보건소도 평소보다 2배가 넘는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기초.응급치료만 하는 수준에 그쳤다.

동대문구 보건소 관계자는 "중환자가 실려올 경우 보건소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구급차도 1대밖에 없어 걱정" 이라고 말했다.

성북구 보건소 관계자는 "오늘 하루 의사 4명이 7백명의 환자를 받았다. 인원이 부족해 이동진료 차량도 내보내지 못하는 형편" 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20일부터 가동한 비상진료대책에 따르면 전국 44개 국.공립병원과 2백43개 보건소, 1천2백72개 보건지소에서 진료를 담당하도록 돼 있다.

복지부는 비상시에는 평소보다 병원은 1.5배, 보건소.보건지소는 2배 정도 외래 진료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처리해 오던 하루 진료 건수가 12만건에 불과, 아무리 비상근무를 하더라도 전국의 의료기관에서 담당하던 진료(하루 평균 1백76만건)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기선민.손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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