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50주년] 미국 참전과정등 생생한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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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미군 참전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해임을 결정했던 해리 트루먼 미국 33대 대통령(재임기간 1945~1953)일 것이다.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본지의 김진(金璡)워싱턴 특파원이 트루먼의 고향 인디펜던스에 있는 트루먼 기념관을 찾았다.

"이 한국 국기를 보세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한국 해군.해병대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써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선물한 겁니다. 군대를 보내줘 고맙다는 뜻이었겠지요. 트루먼 대통령은 이 깃발을 백악관 캐비닛 위에 걸어놓았어요. "

미국 중부의 대평원 미주리주의 서쪽 끝에 자리잡은 작은 시골도시 인디펜던스. 트루먼 기념관의 래리 해크먼 관장은 지하서고에 보관돼 있던 태극기를 꺼냈다.

"이 빛 바랜 기념물뿐만이 아닙니다. 서고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정보보고.전황(戰況)리포트.백악관 회의록 등 한국전쟁 관련 중요기록이 14만여쪽이나 있어요. " 해크먼 관장이 안내한 서고의 미로 속에는 미국이 치러야 했던 극동의 치열했던 전쟁이 역사로 숨쉬고 있었다.

기념관은 각종 사진과 자료로 트루먼의 두가지 역사적 결단, 즉 미국의 참전과 맥아더의 확전론 봉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한국보다 14시간이 늦은 미국 중부는 토요일 오후였다.

인디펜던스 고향집에 머물던 트루먼은 애치슨 국무장관의 두번째 전화를 받고 일요일 정오 짐을 쌌다. 딸은 일기에 아버지의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북한이 남한으로 진격하고 있다. 우리는 싸울 것이다."

이는 사실상 미국의 참전이 결정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전쟁 발발 24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트루먼이 워싱턴으로 돌아가 참모들과 협의해 참전을 결정하는 과정은 예정된 실행절차였다. 가장 중요한 결심은 이미 인디펜던스에서 내려져 있었다.

"이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침공하면서 세계를 시험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 자유세계는 그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인류는 2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다. 공산주의자는 히틀러.무솔리니.일본인들이 저질렀던 일을 재현하고 있다."

트루먼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참전이 초래할 미국 젊은이의 희생에 대해서도 무척 고민했다.

"나는 가공할 만한 인명의 희생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공산주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군사적 방법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요' . 그러나 우리에겐 오직 하나의 선택만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인의 영웅이 된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 등 화려한 반격작전을 지휘해 한국인에게도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맥아더는 압록강 도하와 만주폭격.중국 해안봉쇄 등 중국과의 전면전도 불사하자는 확전론을 폈고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한 정치가 트루먼은 제한전을 고수하고 있었다.

"트루먼은 고졸 학력에다 농부 출신이었습니다. 게다가 키도 무척 작았지요. 모든 면에서 화려했던 맥아더는 이 작은 신사가 갖고 있는 용기와 결단을 과소평가했습니다." 해크먼 관장의 분석이다.

트루먼은 자신의 정책을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비판한 맥아더를 51년 4월 전격 해임했던 것이다.

기념관은 맥아더가 전역하면서 남긴 유명한 의회연설을 비디오 테이프로 상영하고 있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 기념관은 트루먼의 반대편에 서있던 사람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었다.

트루먼은 53년 재출마를 포기하고 낙향했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매일 세블록 떨어진 기념관에 걸어서 출근했다. 그의 즐거움은 학생들에게 대통령과 역사에 대해 조용히 설명해 주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묻곤 했다. 트루먼의 대답은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것" 한 가지였다.

인디펜던스〓김진 특파원

◇ 트루먼 기념관〓1957년에 지어져 협소하다. 지난달 멀티미디어형으로 변신하기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소요금액 2천2백50만달러는 기부금 등으로 충당할 계획. 기념관측은 트루먼을 기억하는 한국인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미 의회는 최근 주요 연방건물인 국무부 청사를 '해리 트루먼 빌딩' 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미국인들이 그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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