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전쟁 위협 정말 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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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상회담 합의문 어디를 찾아봐도 군사안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없다.

한국의 국가이익이 안보.경제적 번영.통일이라고 한다면 번영과 통일은 반영됐으되 통일에 이르기까지 안보를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수행원들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거침없는 군에 대한 말과 북한 경제건설에 군의 동원가능성 언급, 북한 군인들의 사복차림 등을 예로 들면서 북한은 변했으며 위협은 없다고 시사하고, "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은 상호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위를 자제하기로 함으로써 한반도의 불안정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는 설명자료를 내놓음으로써 전쟁위협은 이제 사라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두 정상이 서로 확인하고 공감한 상호불가침과 위협행위 자제, 긴장완화 노력사항이 왜 공동합의문에는 없는가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혹시 북한이 통일과 협력사업은 동족인 남한과 다루고 군사안보 문제는 핵미사일 회담을 가진 미국과 계속 다룰 것이라고 결정한 때문에 안보문제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는가.

이런 추측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내외에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쟁까지 겪은 두 체제가 어떻게 군사적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통일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관리할 것인지, 많은 군사력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통일에 이를 것인지에 대한 기본방침도 합의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전쟁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미국 정부도 합의문에 상호위협 감소나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한.미 안보태세나 미국의 대한 안보정책에 아무런 영향을 줄 사항이 없다고 했다.

북한의 수많은 환영인파와 군 수뇌부의 사복착용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속도전 섬멸전 타격전' 구호가 선명하고 화생무기.미사일 등 수많은 공격용 무기가 그대로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유럽의 냉전해체 역사를 보면 신뢰구축이 잘 돼 전쟁의도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전쟁수단인 공격용 무기를 해체할 때까지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훈이었다.

남북한 간에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 전쟁방지의 제도화, 긴장완화, 군축문제는 평화적 통일에 이르는 필수요소이므로 남북한 실무회담이나 다음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명문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어도 남북한 지도자들이 무력사용 의도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쌍방의 합의에 의해 군 인사들의 상호방문과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를 포함한 쌍방의 공격용 무기를 감소하는 조치들을 채택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전쟁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남북 쌍방이 상호 안보를 존중하며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 긴장완화와 군축을 진행시켜 나갈 것인가.

첫째, 다음 정상회담에서 군사안보 분야에 관한 합의를 해야 한다.

둘째, 정상회담 합의문 2항의 통일방안에 대한 실무차원의 논의시 통일 전단계인 평화공존체제 실현을 위해 여러 가지 상호위협 감소와 군축조치를 합의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통일방안인 연방제에 관한 것이지 군사안보 문제와 관계없다고 북한이 주장하면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셋째, 경과적 조치로서 경제협력 논의과정에서 金위원장의 아이디어를 따서 남한이 돕는 북한 경제건설사업에 북한군 인력과 장비를 대거 동원하게 함은 물론 북한의 국방예산 중 몇%를 경제건설 자금으로 전환하도록 제도화하는 일이다.

방금 시작된 정상간의 정치적 신뢰관계가 튼튼한 평화공존체제로 자라나도록 현재의 적대상태를 부풀리거나 강화시키는 조치는 안된다.

하지만 군사적 대치현실을 무시하고 안보의 임무를 소홀하게 할 수 있는 성급한 말들을 해서도 곤란하다.

필요한 것은 쌍방이 상호 안보를 존중하면서 합의에 의해 공격용 무기를 녹여 쟁기로 만들도록 실천해나감으로써 전쟁 가능성을 실제로 제로로 만드는 일이다.

한용섭 <미국 랜드연구소 한반도 전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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