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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도 이전 당론도 못 정하는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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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나라당의 행태는 갈수록 꼴불견이다. 아예 수권정당, 대안정당이기를 포기한 듯하다. 현 정권에 반대만 하고 있으면 어느 날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시작된 게 언젠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발표한 지 벌써 2년이 다 됐건만 아직도 뚜렷한 당론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 의원총회에서도 "천도 수준의 행정수도 이전에는 반대한다"는 이상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래서야 제1 야당으로서 최소한의 책무조차 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집권 욕심만 있고 어떤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은 정치꾼들의 친목단체에 불과하다. 국회 의석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한나라당의 지금 모습이 이와 비슷하다. 정부에서는 수도 이전 대상 지역을 발표하고 수순대로 이전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 마당이다. 언제까지 분명한 당론을 내놓지 않은 채 미적거리고 갈팡질팡하며 세월을 보내려 하는가.

한번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 용서받지 못한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을 때 행정수도이전특별법안을 통과시켜준 데 대해선 박근혜 대표가 잘못을 사과했으니 그렇다 치자. 어제 당론을 발표하기로 해놓고 '의견 수렴이 덜 됐다'는 등의 이유로 발표를 미룬 건 뭐라 변명할 것인가. 특별법에 동조해줄 때에도 충청권 표 때문이라더니 이번에도 충청권 표 타령이다. 진보진영으로부터 '부패한 보수'란 공격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 무능하기까지 하다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정당은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수도 이전 같은 핵심 국가정책에 의견이 없는 정당을 어떻게 정당이라 부를 수 있는가. 표를 계산하기에 앞서 무엇이 나라에 유익한가를 고민하면 표는 자연히 따라온다. 당당하게 대안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해야 한나라당에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