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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주와 반외세자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6.15 남북 공동선언서에 서명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한반도 통일의 새 역사의 장을 열고 있다.

근본문제와 실천문제에 이르기까지 남북 정상은 21세기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5개 항목 중에서 제1항의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은 양측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인해 나름대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가 처한 역사적 특수성과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주변국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남북한이 자주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면서 우리는 슬기로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첫째, 남북정상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합의한 7.4공동성명에 이어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재확인했던 만큼 남북대화의 기본정신을 승계한다는 의미에서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에 합의했다.

이 '자주' 정신에 대해 남측은 당사자 해결 원칙으로, 북측은 '반외세 자주' 를 주장함으로써 상호간의 해석의 차이는 대화단절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 양측의 합의로 이러한 불신이 완전히 걷히고 같은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자주' 를 공유하게 되었는가.

金대통령은 파격적이면서도 현란한 金위원장의 제스처 뒤에 숨겨진 냉철한 계산을 제대로 읽어 '반외세 자주' 를 포기하는 단서를 포착했는지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북측의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에 대한 차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남북한간의 통일을 위한 자주적 문제 해결의지는 주변 주요국들의 동북아정책을 재검토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자주적 의지에 따라 남북평화체제가 구축된다면 오히려 주변국가들의 국방정책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은 불량국가로 규정한 북한 등의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본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가 이뤄질 때 과연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만으로 자체방위력 증강이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일본의 국방력 강화라는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감수하면서라도 미군 철수주장에 동참할 것인지를 고심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은 자주적 단결에 기초한 평화공존 전략을 통해 북한체제에 위협요인이 될 수 있는 주변국의 군사전략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켜나갈 수 있도록 한반도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셋째, 남북한간의 자주적 관계개선은 남북한 상호관계뿐만이 아니라 주변국들과도 윈-윈(win-win)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될 때 상호이익증대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은 만주지방을 포함하는 동북 3성을 중심으로 남북한과의 환황해경제권의 활성화를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일본은 비교적 낙후돼 있는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남북한과의 환동해경제권을 활성화함으로써 경제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러시아는 남북한을 잇는 철도가 시베리아를 관통하게 될 때 물류비용 절감의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된다.

남측과 북측은 남북문제의 자주적 해결이 주변국가에 대해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의지 천명으로 주변국들의 안보전략의 변화를 가져오고, 또한 주변국들과 경제적 이익을 함께 향유할 수 있게 돼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주변정세 변화는 외세를 배척하는 '반외세 자주' 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북측은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외세를 적절히 활용하는 자주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주변국과의 공존 공영을 누릴 수 있다는 실사구시를 발휘할 때 비로소 한반도의 번영된 미래가 약속될 것이다.

安仁海 (고려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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