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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60나노 8기가' 반도체의 60나노가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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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며칠 전 삼성전자가 '60나노 8기가' 플래시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신문과 방송들이 떠들썩했습니다. 이번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하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까요.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부터 정리해 볼까요. '나노'와 '기가'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시나요. '나노'란 10억분의 1을 뜻하는 단위표시입니다. '기가'란 반대로 10억배를 뜻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노스(난장이)와 기가스(거인)에서 유래한 말이죠. 따라서 '60나노 8기가'란 60나노미터(nm) 공정으로 만들어낸 8기가비트(Gb) 용량의 반도체 칩이라는 뜻입니다.

반도체를 만들 때는 먼저 미세한 설계도를 그린 뒤 이를 하나의 칩 위에 사진처럼 새겨넣게 됩니다. 이때 회로선이 가늘면 가늘수록 더 많은 자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60나노미터란 이 회로선의 폭을 10억분의 60m까지 가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머리카락을 2000가닥으로 쪼갠 정도죠. 학계에서는 이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반도체 회로선 폭을 45나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60나노는 거의 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면 됩니다. 마이크론.인피니온 등 삼성전자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외국 반도체 회사들은 이제 겨우 70이나 90나노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이런 미세한 정밀 기술로 만든 것이 8기가 반도체랍니다. 손톱 만한 칩 하나에 트랜지스터 80억개를 모아놓은 것과 같습니다.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반도체 중 집적도가 가장 높은 제품이죠.

삼성전자는 이번 개발로 경쟁업체들보다 1년 반 정도 앞선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겨우 1년 반 정도 앞선 것이 그렇게 대단할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반도체 산업은 한 발이라도 앞서 나가는 게 다른 어떤 산업보다 중요합니다.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아 비싼 값에 팔다가, 남들이 뒤늦게 따라올 때면 가격을 확 낮추는 것이 일류 반도체 업체들이 흔히 쓰는 전략이죠.

반도체 산업은 생산라인 하나를 까는데 수조원이 들어갑니다. 후발 업체들이 막대한 투자 끝에 겨우 생산을 시작했는데 제품 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자칫 원가를 밑도는 값에 울며 겨자먹기로 팔아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도 기업은 다르죠. 후발 업체들이 따라오기 전에 미리 막대한 투자비용은 물론 이익까지 충분히 뽑아냅니다. 또 일류 기업들은 원가절감 기술이 뛰어나 제품값이 떨어져도 후발업체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죠.

이번에 개발된 반도체가 플래시메모리라는 것도 의미가 깊습니다. 메모리반도체는 PC에 주로 쓰이는 D램과 휴대전화.캠코더.디지털카메라.MP3플레이어 등에 주로 쓰이는 플래시메모리로 나누어집니다. 이 중 플래시메모리는 모바일기기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최근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어요. 자료의 입출력이 쉽고,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특징 때문입니다.

지난해 플래시메모리의 세계시장 규모는 107억달러였으나, 내년에는 175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이서플라이라는 반도체시장 조사기관은 2006년이면 플래시메모리 시장이 D램 시장을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셈이지요.

그러면 이번에 개발한 반도체로 과연 우리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요.

이번에 개발된 8기가비트 반도체 칩은 최대 16기가바이트(GB) 메모리카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메모리카드는 최대 16개의 반도체를 결합해 만들 수 있습니다. 8비트가 모여 1바이트가 된다는 것을 참고하세요). 16기가급 메모리카드는 높은 해상도의 사진(평균 1MB)은 1만6000장, MP3파일(평균 4MB)은 4000개나 담을 수 있답니다. 단행본은 2만권, DVD급 영화는 10편이나 저장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카드의 저장 용량이 이처럼 엄청나게 늘어나면 모바일 기기의 쓰임새는 더욱 다양해질 것입니다. 우선 휴대전화로 선명한 동화상을 몇 시간이고 찍어 저장할 수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의 책을 통째로 메모리카드 수십장에 담아서 갖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DA도 훨씬 작고 가벼워집니다. MP3플레이어에 담을 수 있는 노래가 적어서 불만이었던 친구들도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반도체 값이 쑥 내려와야 합니다. 내년말 께 본격 생산되는 16기가급 메모리카드는 가격이 수백만원을 웃돌 것이라고 하네요. 그렇지만 머지않아 대량생산이 시작되면 값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이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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