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공항도착 ·상봉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3일 오전 10시25분 김대중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보잉 737기)가 평양의 순안 '(順安)'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서울 공항을 이륙한 지 67분만이었다.

하늘엔 약간의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역사적인 순간을 축복하듯 맑았다. 기온은 섭씨 22도.

순안공항은 1955년에 건설된 북한 유일의 국제공항이다.

길이 4㎞. 폭 70m, 길이 3.5㎞.폭 60m짜리 콘크리트 활주로 두개를 갖고 있다. 공항청사 꼭대기에는 고(故) 김일성(金日成)국가주석의 대형 얼굴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좌.우측엔 각각 '평양' 'PYONGYANG' 이란 빨간색의 한글.영문 간판이 솟아있었다. 이곳에서 평양 시내까지 거리는 23㎞.

청사 앞엔 1천여명의 북한측 환영인파가 나와 金대통령 일행을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남성들은 대부분 정장차림 또는 긴팔.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모습이었고, 여성들은 거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양장차림을 한 여성도 간혹 눈에 띄었다.

◇ 金대통령 도착〓활주로에 내린 전용기는 북한측 선도차량인 노란색 지프의 인도를 받아 천천히 청사 앞에 마련된 의장대 쪽으로 향했다.

전용기 동체에는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으며, 꼬리날개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

활주로를 빠져나온 전용기는 오전 10시29분쯤 노란색 무늬가 수놓인 빨간색 카펫 앞에 멈춰섰다.

◇ 김정일 도착과 폭발적인 함성〓金대통령을 태운 전용기 앞문쪽에 트랩이 다가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군중의 오른편에서 "와" 하는 함성이 쏟아졌다. 함성은 순식간에 가운데로, 왼쪽으로 전파됐다. 군중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분홍.빨간색의 꽃술(조화)을 흔들었다.

우리 수행원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순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승용차 편으로 공항청사 안쪽까지 들어온 것이다.

金위원장은 황토색 계통의 인민복 차림에 굽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김일성 배지는 달지 않은 상태였다.

테두리가 큰 안경을 쓴 그는 군중을 향해 잠시 손을 흔든 뒤 붉은색 카펫을 따라 전용기 앞으로 향했다.

◇트랩 밑까지 영접나온 김정일〓金위원장은 와병설이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문 등을 일축이라도 하듯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얼굴에도 건강미가 느껴졌다.

金위원장이 의장대 앞을 지날 때쯤엔 "김정일" 연호와 "만세" 소리가 터져나왔다. 金위원장은 2백여m를 걸어가 전용기 트랩 앞에서 양 발을 조금 벌린 상태로 홀로 섰다.따르던 경호원들은 약간 뒤로 물러섰다.

북한측의 한 안내원은 "경애하는 장군님이 조국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오셨다" 며 "원래 잘 안나오시는데 무더운 날씨를 마다않고 나오셨다" 며 이례적임을 강조했다.

이 안내원은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분이 우리 장군님" 이라고 선전했다.

金위원장이 트랩 앞에 서자마자 곧 전용기 앞문이 열렸다. 이 순간 문 안쪽에 새겨진 청색바탕에 금빛의 청와대 문양(봉황 한쌍과 무궁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 두 정상의 역사적 만남〓두 정상의 만남은 출영객들의 환호와 이들이 흔드는 수천의 붉은색 꽃술 물결속에 이뤄졌다.

金대통령이 트랩 위로 모습을 나타낸 시간은 13일 오전 10시35분. 평양의 햇살이 金대통령의 얼굴에 처음 내리비친 순간이다. 환영객들은 일제히 "만세" 를 연호했고 공항은 이들의 함성에 뒤덮였다. 金위원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金대통령을 올려다 봤다.

金대통령을 처음 맞은 사람은 金위원장의 의전담당비서 전희정(全熙正)씨. 그는 전용기 출입문이 열리자 빠른 동작으로 트랩을 올라 기내의 金대통령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金대통령을 안내했다. 金위원장을 대신한 기내 영접이다.

트랩 위에 나온 金대통령은 잠시 오른편을 향해 천천히 주변의 풍경을 둘러봤다. 북녘의 산하를 눈에 담으려는 듯했다. 이희호(李姬鎬)여사도 金대통령 바로 뒤에 모습을 나타냈다.

金대통령은 자주색 넥타이에 감색 정장, 李여사는 흰색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金위원장이 트랩 아래에서 박수를 치며 金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했고, 金대통령은 트랩 위에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주 박수를 쳤다.

이윽고 20여개의 계단을 걸어내려온 金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金위원장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지대에 해빙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은 서로 손을 감싸쥔 채 5초간 힘차게 흔들었다. 두 정상의 모습은 위성을 타고 곧바로 전 세계인의 눈과 귀로 전해졌다. 세계를 향해 한반도 평화의 서막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金위원장이 먼저 오른손을 내밀어 金대통령을 맞았고 金대통령은 "반갑습니다" 라며 손을 잡았다. 사회주의식 포옹은 없었다.

金대통령에 이어 金위원장은 이희호 여사와도 부드럽게 악수를 했다. "반갑습니다"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평양〓공동취재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