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김대룡 “기쁨도 잠시 하마 부끄럽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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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5년 전부터 중앙시조백일장과 맺어 온 인연.

해마다 세밑 즈음 그 문턱만을 서성이며 돌아섰던 아득한 밤이 떠오릅니다. 비로소 오늘, 그 문을 열고 들어 선 기쁨에 이마 언저리가 푸르러지는 느낌입니다. 조금은 어둡고 초초했던 혼자만의 시간들. 그늘이 넓은 나무일수록 이파리가 무성하다는 것을 시조와 더불어 애태운 시간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시조를 통해 담고자 하는 언어의 이파리가 아직도 변변찮은 사실에, 우듬지 쪽부터 쏟아지는 햇살이 하마 부끄럽습니다.

사치스럽지 아니한 서정의 울타리에, 과장된 건더기가 넘치지 않는 맑고 따뜻한 국이 되겠습니다. 조촐한 밥상일지라도, 문학으로 소외된 이들의 목마름을 적셔줄 줄 아는 작지만 당찬 시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언제나 힘이었던 가족과 친구, 손잡아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중앙일보사, 게으른 제자를 믿어 의심치 않으셨던 이지엽 선생님께 시조의 발자국을 뿌리 깊게 남기겠다는 약속으로 마음의 큰절을 올립니다.

◆약력=▶1983년 전남 목포 출생 ▶경기대학교 국문과·문창과 졸업 ▶대한민국 육군 학사사관 48기 임관, 중위 전역

심사평
시상 이끄는 섬세한 상상력 빛나

월별 백일장을 통해 검증된 응모자들의 작품이라 우열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작품마다 오랜 숙련의 진지함과 감각의 새로움을 위한 노력이 뚜렷했다. 심사위원회에서는 중앙신인문학상의 영예가 아깝지 않은 당선작을 가리기 위해 투고된 모든 작품을 정독했다. 1차 심사 결과 김경숙·김대룡·서덕·유선철씨의 작품이 주목되었다.

열띤 논의 과정을 거쳐 다시 김경숙·김대룡으로 압축되었다. 김경숙씨의 작품은 발상과 감각적인 표현 등 작품의 밀도가 돋보였다. 김대룡씨의 경우는 보내온 작품 전반의 완성도가 두루 뛰어났다. 언어의 균제에 부드러움을 겸비하여 작품 세계의 진전이 확연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당선작 ‘겨울 폐차장’은 시상을 끌고가는 섬세한 사유의 힘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겨울밤 층층 쌓인 “일가(一家)의 산”을 비루한 삶이 “몸 눕힐” 묏자리로 육화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폐차장”과 중의적으로 연결한다. 더욱이 아버지의 “잠의 집”을 끌던 산이 “용광로 속 등뼈”를 만나 쓸쓸함과 슬픔을 넘어 자기 성찰을 나아가는 데서 의식의 밀도를 엿볼 수 있다. 눈부신 개성의 성취로 정형 미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길 바란다. 당선권에서 놓아버린 작품들이 아쉽다. 타협과 안주가 아닌 자기 갱신의 분발이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기섭·정수자·박현덕·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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