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회의원들 벤처에 "정치자금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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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총선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이 사실상 시작된 지난 3월. 도쿄(東京)의 인터넷 접속업체인 MTCI는 상당수 의원들로부터 후원회 모임 입장권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정치 모임을 갖고 관련단체 등으로부터 입장료를 받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자금모집 방식. MTCI는 의원 한사람당 2만~10만엔(약 20만~1백만원)씩이나 하는 입장권을 다량 구입했다. 올 초의 회사 신년축하회에 나와 찬조연설까지 한 의원들을 푸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중에는 회사의 PR비디오에 출연한 의원도 있었다.

이들 뿐만 아니다. 요즘은 회사와 전혀 관계없는 의원들도 손을 내밀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심지어 자금조달 방식이 문제가 돼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한 정보기술(IT)기업 관계자는 "이미지가 나쁜 우리한테까지 입장권 구입을 요청해 놀랄 뿐" 이라고 말한다.

IT 벤처기업에 의원들이 꼬이고 있다. IT산업이 일본 경제의 기관차로 주목받으면서 벌어지는 새 흐름이다.

지금까지의 돈줄이던 건설.금융업계가 장기 불황에 허덕이면서 IT업계의 뒤를 봐주고 자금을 챙기는 IT족(族)의원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업계도 로비를 위한 연줄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금 출처만 달라졌을 뿐 유착구조는 예전 그대로다. IT족 의원의 발빠른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해 11월 A의원은 신용보증협회의 융자보증 대상업체에서 통신사업자가 빠진데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서를 중의원 의장에게 냈다.

얼마 후 A의원 비서는 질문서를 비롯한 두툼한 서류를 인터넷접속업자협회에 보냈다.

협회가 정식으로 발족되기 직전이었다. 결국 A의원은 예정에 없던 설립 총회 내빈으로 초대받았다.

협회 관계자는 "국회에 질문서를 낼 만큼 공헌도를 과시하는 의원을 홀대할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한다.

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이전부터 업계의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다.

A의원도 이미 사업용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부터 10만엔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래도 A의원은 "질문서 제출은 IT업계 전체의 장래를 위한 것" 이라며 유착관계를 부인한다.

요즘에는 IT관련 초당파 의원 모임에 들어가려는 각당의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경제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IT업계는 프런티어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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