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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위암 중국동포, 한글 배우는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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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위암 투병 중인 중국동포 박연화씨(맨 오른쪽)가 서초구보건소의 이은주(왼쪽)·위은희(가운데) 간호사와 함께 집 앞 산책에 나섰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는 박씨의 아들 최인성(3)군. [안성식 기자]

“언니, 새해엔 다 나을 것만 같아요. 그럼 일자리를 찾아서, 우리 인성이 학원도 보내고 싶어요.”

15일 서울 서초동 한 임대주택. 중국동포 박연화(33)씨가 위은희(37)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 “이게 다 언니 덕이에요.” 웃던 얼굴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또 왜 울어….” 위 간호사의 눈도 붉어졌다.

박씨는 위암 말기 환자다. 한국말을 배우러 찾은 서울에서 택시기사인 남편을 만나 2005년 결혼했다. 이듬해 중국 친정에 아이를 낳으러 다녀온 사이 남편은 집을 빼서 사라졌다. 박씨가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박씨를 버린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에야 자신이 암에 걸렸단 것을 알았다. 아이와 둘이 서울 방배동 주택가에 지하방을 얻어 살던 때였다. 서초구보건소 건강보건팀의 위 간호사가 이 집을 찾은 건 올 5월.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의 일환이었다. 방은 습기가 차 검은 곰팡이가 가득했다. 비쩍 마른 박씨는 항암치료 때문에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 500만원이 다 까여 나갔어요.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사연을 듣던 위 간호사는 박씨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때부터 도움이 시작됐다. 한국말에 서툰 박씨의 손을 잡고, 위 간호사가 각종 신청서를 써줬다. 중증환자로 등록시켜 암 치료비를 지원받게끔 하고, 아이에겐 달걀·우유 등의 식료품이 지원되게 했다. 친언니가 가끔 보내주는 생활비가 고정 소득으로 책정된 걸 바로잡아, 수급비를 16만원에서 66만원으로 올려주었다. 쫓겨나게 생긴 월세방 대신 40㎡짜리 임대주택을 신청해준 것도 보건소 식구들이다. 임대보증금 180만원은 동사무소의 지원(100만원)과 보건소 직원들의 성금으로 마련했다. 위 간호사의 부탁으로, 근처 식당은 매달 10만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하기로 했다. 권영현 보건소장도 매월 10만원의 후원금을 보내기로 했다.

이런 관심 속에 박씨의 병세는 눈에 띄게 호전됐다. 최근 마친 1차 항암치료 결과 위의 암세포가 상당부분 사라진 것이다. 43㎏으로 줄었던 몸무게도 46㎏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요즘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연하장을 보내고 싶어서다. “한때는 아파도 손잡아줄 사람이 없었어요. 이제 언제든지 달려와줄 언니들이 이렇게 있으니까….” 박씨는 또 눈물을 훔쳤다.

임미진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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