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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주인 없는 조직의 지배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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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의 일부 국유 또는 공유기업에서는 사원들이 투표에 의해 사장을 뽑는다. 그렇게 뽑힌 사장이 사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경영을 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그렇게 사장이 되면 사원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임금을 올려주고 사원들의 복지를 보살피는 온정주의적 경영자가 되기 쉽다. 그러다 보면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교수들의 투표에 의해 뽑힌 총장은 교수들의 복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주인 없는 기업에 있어 전문경영자는 잘못하면 노조의 압력에 의해 임금을 많이 올려주고 경영이 해이해지다가 결국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과거의 기아자동차가 바로 그러한 예다. 국유기업의 경우에도 상당수는 노조와의 암묵적 이해 속에서 경영자들이 관리의 규율을 잃으면서 경영이 방만해지는 경우를 보아 왔다.

영리기업이든, 비영리기업이든, 또는 국유기업이든, 사유기업이든 간에 주인이 없는 기업에 있어 최고경영자(CEO)가 조직의 규율을 제대로 세워 필요한 혁신을 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과제다.

조직이 동창회라면 상관없다. 동창회에서야 구조조정이 필요없고 혁신이 필요없으니까 인기있는 사람이 투표에 의해 선출돼도 상관없다.

그러나 지금의 기업이나 대학의 환경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영리조직이야 말할 필요가 없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학의 경우에도 지금은 5년 후나 10년 후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동창회나 취미클럽에서 회장을 뽑는 식으로 CEO를 뽑는 조직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리나라의 기업은 아직은 소위 오너가 있기 때문에 사장을 뽑는 일이 이사회보다는 오너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10년 후쯤에는 많은 기업에서 사장을 진짜 이사회가 뽑아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조직에서 이사회가 사장을 제대로 뽑을 역량을 갖고 있는가.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이 혁신을 하기 위해 필요한 리더의 자질을 잘 파악해 그러한 사람을 조직적으로 찾아내는 일을 우리는 지금까지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대학에서, 은행에서, 기업에서 주인이 없이 CEO를 뽑는 경험을 쌓아야만 10년 후쯤에나 우리도 조직을 제대로 운영할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CEO를 제대로 뽑는 일이 조직 지배구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이야말로 각 조직이 경험을 축적해가면서 지혜를 쌓아 나가야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노하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협력하고 동참해야만 그러한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위기는 지배구조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의 조직 운영은 강압과 복종 내지는 강압과 저항으로서만 이어져 왔다. 정부의 명령에 의해, 오너의 명령에 의해, 상관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 왔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강압의 힘이 약해졌고, 그 결과 조직과 사회는 규율과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압은 약해졌으나 저항만 남아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조직의 현실이다.

강압이 없어졌음에도 사장실을 점거하고, 꽹과리를 치고, 억지를 부려대는 일이 아직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강압이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제대로 된 CEO를 뽑고 조직을 자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통치능력을 잃고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구현 <연세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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