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에 띄운다] "남북하늘 펄펄나는 새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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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북 정상회담이 14일 남았다. 오늘부터 이번 정상회담에 특별한 염원을 담은 인사들의 글을 싣는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슴 설레는 이가 한둘이랴. 특히 나 같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마음은 남다르다. 분단 이후 첫 대사(大事)인지라 당연히 이런저런 희망사항이 솟구친다.

우선, 70이 넘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 늙은 학도(學徒)의 희망은 남북한의 자연생태계 보존을 위한 상호교류가 이뤄지는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류학자였던 아버님(元洪九박사.70년 작고)의 영향으로 김일성대학에 입학해 조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일성대학 교수이자 북한 과학원 생물학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던 아버님은 4남1녀 중 막내인 내가 당신의 뒤를 잇겠다고 하자 내심 기특해 하면서 적지 않은 기대를 거셨던 것 같다.

1951년 1.4후퇴 때 두 형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 뒤로 두번 다시 아버님을 만나뵐 수 없었다. 우리 부자(父子)는 국제학회를 통해 서로의 논문과 저술을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그러던 중 63년 6월 내가 서울 홍릉에서 발에 가락지를 끼워 날려보낸 북방쇠찌르레기 99마리 중 한마리가 2년 만인 65년 초여름 북한 평양의 만수대공원에서 발견됐다. 이 일은 북한 조류학계가 국제학회에 보고함으로써 전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하늘을 나는 새는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가는데 우리는 도대체 뭔가" 라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한반도의 생태계는 남과 북을 막론하고 농토의 확충과 산업화를 위한 마구잡이개발의 와중에서 분단화와 파괴로 신음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생태계의 장래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특히 남북의 당사자들은 동서 1백55마일에 걸친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자연생태지역이라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군사적 목적으로 적지 않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그나마 한반도 특유의 동.식물을 포함한 중요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

남북정상의 합의 아래 생태보존지역으로 법제화해 영구보존토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남북한 합동 학술조사가 이뤄진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다. 더하여 청춘의 꿈을 묻고 온 모교 김일성대학과 원산농업대학의 후배들에게도 나의 부족한 지식을 전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남과 북이 비정치적인 학술분야에서 인적 교류까지 성사시킨다면 더욱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앞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즉시 만나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백마디 말이 무슨 소용인가. 자나깨나 그리는 부모형제를 만날 수만 있다면…. 판문점 같은 곳에 상봉장소를 마련하고 점차 고향을 상호 방문하는 길도 활짝 열려야겠다.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조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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