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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6만 명 지원 ‘학벌 업그레이드’ 열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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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06면

최근 한 편입전문학원이 개최한 편입학 설명회에 많은 학생과 학부모로 성황을 이뤘다.

2010학년도 대학 편입학 시험이 19일 고려대를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전국 190여 개 대학에서 각각 치러진다. 이제 그 규모나 경쟁의 치열함에서 대학 편입학은 ‘제2의 대학입시’나 다름없다. 학사 편입(학사 학위과정을 마친 뒤 3학년에 편입)과 일반 편입(대학 2년 과정이나 전문대를 마친 뒤 3학년에 편입)을 모두 합한 지난해 편입시험 지원자 수는 총 26만여 명이었다. 대부분 여러 대학에 복수지원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실제 지원자 수는 7만~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대학이나 전문학원 관계자들은 추정한다. 2010학년도 수학능력평가시험 응시자가 67만7000여 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제 2의 大入’ 편입시험의 계절

경쟁률은 더욱 살인적이다. 지난 10일 마감된 고려대 영어영문과의 일반편입 경쟁률이 118 대 1이었다. 2명 모집에 237명이 몰린 것이다. 같은 대학 경영학과도 9명 모집에 739명이 지원, 8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처럼 지원생이 몰리는 서울·수도권 중상위 대학의 편입시험 경쟁률은 평균 수십 대 1이다. 같은 대학 신입학 경쟁률과 비교도 안 된다.

“전문대-4년제, 사회에서 차별 너무 커”
“기대했던 것보다 수능 점수가 잘 안 나왔어요. 대학교라는 게 ‘네임밸류’가 중요한데, 좋은 데는 못 가겠더라고요. 재수할까도 고민해봤지만,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편입시험을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인영(21·가명)씨는 2010학년도 편입시험을 준비 중이다. 현재 서울의 작은 사립대학인 S대 영어학과 3학년생이지만 이번 학기는 휴학을 했다. 편입전문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집중 공략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3년 전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때부터 편입을 생각하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 사실 대학 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정말 좋더라고요. 교수님들도 좋으시고, 전공도 영문학보다는 실용적인 것 같아 마음에 들고…. 네임밸류만 좀 더 높다면 옮기려는 생각 전혀 안 했을 거예요.” 이씨의 아버지도 편입시험을 강력히 권하신다고 했다. 그는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해보신 결과 그게(출신학교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미선(23·가명)씨는 좀 더 구체적인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는 대구 소재 전문대의 호텔서비스학과를 졸업한 뒤 올 초 같은 대구 시내 4년제 대학인 K대 경영학부로 옮겨왔다. “편입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2학년 1학기에 호텔로 실습을 나갔어요. 일을 하다 보니 힘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직원들을 보니까 몸으로 직접 뛰는 건 대부분 전문대 이하 졸업생이 하고 4년제 나온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앉아서 머리를 쓰는 일을 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 얘기도 자극이 됐죠.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의사들과 어울리게 됐는데, 귀엽다며 재미있게 말을 받아주시던 분들이 전문대생이라고 하니까 태도가 확 달라지더래요.”

청년 취업난 속에 ‘학벌 업그레이드’는 편입 지원자들의 가장 절실한 목표다. 한국교육개발원 대입제도연구실의 박병영 연구위원은 “자기가 원하는 특수전공을 찾아 수도권에서 일부러 지방대로 편입하는 극소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판이 높은 대학으로의 이동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전문대에서 일반대학으로, 지방 사립대에서 국공립대로, 지방대에서 수도권 대학으로의 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같은 대학 내에서도 취업에 유리한 학과와 그렇지 못한 비인기학과의 경쟁률 차이는 매우 크다. 대부분의 지방 사립대는 물론 고려대나 서강대 같은 서울의 상위권 대학조차 과별이 아닌 전체적으로는 모집인원을 모두 충원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편입시험도 재수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편입을 준비하는 과정은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 보통 주 4~5일, 하루 3~4시간 수업을 하는 편입학원의 학원비는 월 30만원 안팎이다. 일반편입의 경우 상당수가 한 학기 정도 휴학을 하며 준비한다. 지방대 공과계열을 다니며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해 1년간 휴학을 한 적 있는 김승범(27·회사원)씨는 “요즘엔 취업 준비를 위해서도 휴학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금 부담됐던 건 사실”이라며 “결국 편입에는 실패했는데 다행히 1년간 영어 공부에 집중한 게 입사시험 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 땐 편입경력 감점 요인 될 수도”
편입시험 통과 후에도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만만치 않다. 앞서 예를 든 대구 K대 윤미선씨는 이번 학기에 힘이 들어 휴학계를 냈다. “앞으로 직장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등을 생각하면 편입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문대와는 너무 다른 학사 시스템 때문에 한동안 애를 먹었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정보를 얻을 수 없고, 아는 사람은 없고…. 게다가 전문대는 실습 위주였기 때문에 이론적 배경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경영학 전공과목을 들으려니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요.”

한국교육개발원의 박 연구위원은 “기존 연구 결과를 보면 편입생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높은 전공 만족도와 충실도를 보여준다”며 “그러나 출신 대학과 편입 대학의 커리큘럼의 차이, 수강과목이나 교수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요인으로 인해 학업성취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 기존 학생들 입장에서 편입생은 자신과 다른 경로로 들어온, 그것도 대부분 나이 많은 학생으로 구분돼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기도 쉽다.

광주의 사립종합대학을 다니다가 서울시립대로 편입, 내년 2월에 졸업하는 이종혁(26·가명)씨는 취업을 준비하며 또 다른 벽을 느끼고 있다. 같은 전공으로 편입해 학교 생활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취업 때문에 여기저기 낸 이력서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곤 하는 것이나 면접 때 편입경력에 대해 물어보는 면접관의 태도 등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이씨는 “소위 ‘스펙’이 확실히 뛰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한 수준의 입사 지원생들에게 편입 경력은 감점 요인이 되는 것 같다”며 “면접관마다 항상 그 사실에 대해 물어보는데, 그 태도가 별로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면접만으로 뽑는 대학도 나와
일부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대학 편입 수요는 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편입학이 ‘학력세탁’에 불과하고 편입학 비용이 상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동시에 그만큼 절실한 필요에 기인한 것임을 보여준다”며 “편입제가 보다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 구조를 바꾸고 성적 위주의 진로지도를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고려하도록 내실화하는 것은 근본적이면서도 장기적인 해결책”이라며 “각 대학이 현재 영어나 수학 시험 위주로 돼 있는 편입생 선발제를 보다 전문화한다든지 편입생들의 적응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등은 먼저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건국대는 다른 대학들의 주시 대상이다. 2009학년도부터 1차 영어시험을 서류전형으로 대체하고 있다. 건국대의 이재철 입학관리팀장은 “영어시험 위주로 편입생을 뽑다 보니 학생들이 지나치게 편입학원에 의존하는 데다 전공까지 바꿔 들어온 편입생들이 학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그보다는 스스로 전공과 관련해 편입을 준비한 과정을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해 전형 내용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공정성 논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2009학년도 편입생들의 적응도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교수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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