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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기술 주고 자원 얻는 '패키지 딜이 열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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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20면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었던 지난해 1월 한승수 당시 유엔 기후변화 특사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대통령은 총리를 지명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한 특사는 총리로서 자원외교를 할 수 있는 가장 적격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집권 전반기 자원 외교 성적표는 그런대로 괜찮다. 석유와 가스의 자주 개발률이 올해 8.1%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07년(4.2%)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성장한 수치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자주 개발률이 1.4%포인트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자원 외교를 주도한 사람은 한 전 총리였다. 그가 물러난 다음에는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대통령 핵심 측근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해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자원 외교 뛰는 정치인들

박영준 "서로 윈윈, 믿음 주는 게 중요"
박영준 국무차장은 ‘왕차관’이란 얘기를 듣지만 정치적 행보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행정 각부의 업무를 조정하면서 자원 외교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자원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올 8월 에너지 자원협력 외교단을 이끌고 가나와 콩고(DRC)·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면서부터다. 그는 특히 콩고의 바나나항 개발 사업에 주목했다. 사회적 인프라가 미흡한 콩고에 항구를 건설해 주고 그 대가로 자원을 가져오는 방안, 일종의 ‘패키지 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 차장은 조제프 카빌라(38) 콩고 대통령을 만났다. 카빌라 대통령은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고 민주적 선거를 통해 리더십을 확보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 차장은 중국과 인도 등이 대통령궁이나 대형 경기장 등을 지어주며 접근했지만 콩고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을 이전하는 데 인색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카빌라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서로 윈-윈(win)해야 한다. 콩고가 내전을 치렀지만 한국도 내전을 거쳐 산업화를 이룩했다. 우린 그런 경험에서 나온 발전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그러자 카빌라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박 차장을 수행했던 김은석 총리실 외교안보정책관은 전했다. 박 차장이 “나는 '미스터 콩고'가 될 테니 대통령은 '미스터 코리아'가 돼 양국의 협력을 도모하자”고 했더니 카빌라 대통령은 곧바로 바나나항 개발 사업을 허락했다고 한다. 박 차장은 귀국 후 민관 합동 실무조사단을 구성해 콩고에 파견했다.

박 차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상대국에 ‘당신들의 자원을 싹쓸이 하려는 것이 아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인프라 건설, 보건·의료 지원, 행정 경험 전수 등을 패키지로 묶어 제공하고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나와도 주택 20만 호 건설 계약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하던데.
“가나는 영어를 쓰고 기독교가 인구의 70%로 사회 분화 가능성이 적은 나라다. 금이 많이 나고 최근에는 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돼 내년부터 생산이 이뤄진다. 그런데 석유 생산과 관련한 인력이 살 수 있는 집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나 정부는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의 민간기업에 그런 사실을 알려줬다. 우리 기업의 주택 건설이 나중에는 자원 확보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와 자원 외교의 연계 방안은.
“2015년까지 ODA를 현재의 세 배 이상인 30억 달러 규모로 늘려야 한다. 또 선진국과 힘을 합쳐 새로운 ODA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식량안보에 관심이 많은 미국의 자본과 우리의 새마을운동 노하우, 농업 기술 등이 결합된 형태의 ODA가 아프리카 등에서 이뤄지면 그 성과는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원 외교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자원 외교 창구를 통일하는 방안은.
“각 정부 기관이 국제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으나 여러 곳에서 자원 외교를 추진하다 보니 통일성이 떨어지는 점이 없지 않다. 아프리카의 경우 대사관 등 공관으로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기업도 공관을 통해 일을 추진하면 축적된 정보나 좋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공관 네트워크 활용해야"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자원 외교에서 한승수 전 총리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재임 기간 동안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 3개국, 터키, 요르단·아랍에미리트(UAE) 등을 방문했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과는 우라늄 장기 도입 계약(2017년까지 총 5740t, 국내 연간 사용량 4000t)을 맺는 등의 성과를 냈다. 요르단으로의 원전을 수출한 것도 그의 자원 외교 성과라 할 수 있다.

한 전 총리는 UAE 방문 때 사막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UAE 지도자들과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사막을 기행한 다음 UAE 측 인사를 만나는 일정을 잡았다 한다. 올 3월 터키를 방문했을 때엔 지방선거 운동 때문에 바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늦은 시간도 좋다고 고집해 면담을 성사시켰다 한다. 그는 밤 9시30분 에르도안 총리를 만나 한국 원전기술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올 7월 몽골을 방문했다. 몽골은 석탄·동·우라늄 등이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몽골 정부는 앞으로 30여 개의 광산을 더 지정할 계획이다. 이를 염두에 둔 박 전 대표는 소드놈 엥흐바트 원자력청장을 만나 “몽골은 세계 10위의 광산 보유국인 만큼 초기 탐사 단계부터 한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표는 담딘 뎀베렐 국회의장을 만나서도 “타반톨고이 유연탄 광산개발을 위해 한국의 단체와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투자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의장께서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지난 9월 취임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열린 ‘자원개발 CEO 포럼’에서 “해외 자원 개발은 최우선 국정 어젠다로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전개 중”이라며 “무엇보다 자원 개발 공기업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투자 재원 다양화, 자원 개발 정보 체계화, 공기업의 투자 선도 등의 정책 과제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며 “선제적 투자를 결단하는 CEO 여러분의 야성적 충동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원 외교에 아무리 많은 정치적 역량을 투입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내년 상반기 중에는 남미나 아프리카로 직접 자원 외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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