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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백20년 전에 '게으름의 미학' 을 설파한 이가 있었다.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폴 라파르그(1842~1911)였다.

"아 게으름이여, 우리의 기나긴 불행을 동정하라. 아 예술과 고귀한 덕성의 어머니인 게으름이여, 인간의 고뇌를 위로하는 방향(芳香)이 되어라. " 라파르그가 1880년 옥중에서 발표해 파문을 일으킨 논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Le Droit la Paresse)는 게으름에 대한 시적(詩的) 찬미로 끝난다.

그는 원래 의사가 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에 빠져 런던으로 건너가 마르크스의 비서가 됐고 둘째 딸 로라와 결혼까지 했다.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하루 12~13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은 신의 소명(召命)이라고 믿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가 깨고자 했던 것은 노동은 신성하고 게으름은 죄악이라는 고정관념이었다.

라파르그는 자본가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프로테스탄트적 직업윤리의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노동자들의 불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개인과 사회의 모든 불행은 노동에 대한 맹목적 열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잊혀졌던 라파르그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초 파리에서는 라파르그의 논문 제목이 붙은 연극이 공연됐다.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그러나 각자에게는 최소한의 일거리를' 이라는 라파르그의 신념을 관객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연출자 로제 구즈는 설명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무시됐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가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맞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주4일 근무제 도입을 외치는 시민단체가 생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10%가 넘는 고(高)실업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면서 동시에 시대적 변화에 맞는 인간적 삶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당 닷새 대신 나흘만 일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며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실업난 해소를 위해 리오넬 조스팽 정부는 올해부터 2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2002년부터는 모든 사업장으로 이를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보다 획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4일 근무제 도입론자들은 주장한다.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하는 기업에 대해 고용을 10% 늘리는 조건으로 임금의 3% 삭감과 실업보험분담금(임금의 8.2%) 면제를 허용해 줄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할 인건비 총액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향후 3년내 1백60만~2백만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4일 근무제 도입 논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벨기에.스위스.스페인.이탈리아 등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실업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의 변화에 부응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우리의 경우 최근에야 노동계를 중심으로 주5일 근무제 도입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뚜렷한 방침을 못정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토요일에도 일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는 '무노무식' (無勞無食)의 논리가 횡행했던 중국조차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얘기를 굳이 꺼낼 것도 없이 주5일 근무제와 주5일 수업제는 불가피한 시대적 선택이다.

세상은 창의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창의는 여유와 관조에서 나오는 것이지 쥐어짠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노동을 위한 노동, 공부를 위한 공부의 노예에게서 창조적 사고를 기대할 순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자기계발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도 그렇고 점점 황폐해져가는 가정과 사회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도 1주일에 이틀은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로 인한 국제경쟁력의 약화가 우려된다면 법정근로시간은 그대로 두고 평일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라도 주5일 근무제는 민간과 공공분야 구별없이 전면 실시돼야 한다.

게으름을 예술과 고귀한 덕성의 어머니로 본 라파르그의 관찰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지만 정확한 것이었다.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게으른 주인공들은" 이라며 밀란 쿤데라는 속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한탄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여유와 관조이지 눈먼 부지런이 아니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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