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본 한국] 나를 열받게 하는 소소한 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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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4년 일본에 있을 때 석사논문을 쓰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적응' 이란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서울에 주재하는 일본인 2백33명에게 '한국생활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를 물었다.

그들은 대개 서울에서의 쇼핑이나 외식문화 등은 일본과 별로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다만 대기오염.수질오염 등의 도시공해, 그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와 인구과밀, 교통지체와 소음 등 도시환경에 대해서는 비교적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건 서울만이 아니고 어쩌면 산업화.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대도시라면 어디나 같을 것이다.

조사를 한 지 6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 한국사회는 엄청나게 변화했다.

나 또한 남편을 따라와 한국에 살게된 지 2년이 됐다.

설문조사를 했던 내 자신이 '한국사회에의 적응' 이란 문제를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서울생활은 확실히 힘들다.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스트레스에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일상의 아주 작은 일들이다.

예를 들면 마음놓고 수돗물을 마실 수 없다는 것,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안좋다는 것, 항상 어딘가에서 공사가 진행중이고 그 소음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 도로가 울퉁불퉁하고 걸을 때면 무시로 사람들과 부딪쳐야 한다는 것, 자동차운전이 너무 거칠다는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얼마 전엔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예고도 없이 수돗물이 안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화가 '폭발'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1주일 가까이 단수가 계속돼도 한국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마 일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큰 기사거리가 됐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파워풀' 하고 '터프' 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아마도 이런 숱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살아가려는 방편에서 나온 행동양식인지도 모르겠다.

이와무라 후미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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