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진타오 시대] 공산국가 답지않은 매끄러운 권력 승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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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의 사임으로 중국의 권력 이양이 또 한번 순조롭게 이뤄졌다. 전임자를 타도하고 일어서는 게 관례였던 옛 소련 공산당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확실한 전관 예우에 기초한 매끄러운 중국의 권력 이양 전통은 덩샤오핑에 의해 수립됐다.

마오쩌둥에 의해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맞은 덩이었지만 그는 마오에 대한 평가에서 사심을 두지 않았다. "마오쩌둥의 공(功)이 칠이라면 과(過)는 삼이다"라는 말로 전임자 마오를 끌어안았다. 문화대혁명의 큰 잘못을 포용한 것이다.

장쩌민 또한 이 같은 덩의 태도를 본받았다. 장은 그의 집권 15년 동안 '덩샤오핑의 기치 아래'라는 구호를 빼놓은 적이 없다. 이는 후진타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후의 연설 어디에나 등장하는 '장쩌민의 3개 대표론에 따라'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3개 대표론'이란 중국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과 선진 문화, 광대 인민의 이익 등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마오쩌둥.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오르고자 한 장쩌민의 바람이 피력된 것이다. 장은 이를 그의 집권 15년 사상을 결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바로 이처럼 장이 가장 아끼는 3개 대표론을 항상 앞세운다. 여기엔 다양한 뜻이 내포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대란 없이 권력이 이양됨으로써 중국엔 '권력 이양 과정에서 피비린내는 없다'는 전통이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바로잡습니다.

9월 20일자 2면 '공산국가답지 않은 매끄러운 권력승계' 기사의 장쩌민 약력 그래픽에서 장쩌민의 출생 연도가 잘못돼 바로잡습니다. 그래픽엔 1918년 8월 17일 중국 장쑤성 양저우 출생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장의 출생은 18년이 아닙니다. 26년 8월 17일로 정정합니다. 또 3면의 '장쩌민 왜 물러나나' 기사 중 정치국 상무위원 황쥐의 권력 서열이 5위로 표기돼 있습니다. 이 또한 5위가 아닌 6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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