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웅·우화 다룬 민화집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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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이 "민화(民話)는 러시아적 영혼의 웅대함" 이라고 말할 정도로 러시아에서 민화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민간설화인 민화가 특히 러시아에서 중요한 것은 그만큼 민화가 많고 예술성.문학성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러시아 민화집' (서미석 옮김.현대지성사.2만7천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의 대표적 민화를 소개하고 있다.

책에 실린 1백78편의 민화는 러시아 변호사로 평생 민화채집에 헌신했던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아파나세프(1826~71)가 수집한 민화집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러시아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이 넓은 영토와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민화가 만들어졌다.

어릴 때부터 전문 이야기꾼을 고용해 민화를 즐겨 들었던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나 고골리와 같은 문호들에게도 민화는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러시아문학 발전의 밑거름이 돼온 것으로 평가돼왔다.

민화는 중세 이후 외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민족영웅 얘기, 또는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가 주종을 이룬다.

얘기 중에 '저절로 나무를 패는 도끼' '먹어치워도 다시 살아나는 거위' '영웅이 타는 나무 독수리' 와 같은 환상적인 소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고달픈 현실로부터 도피하고픈 심리에 호소하는 이상향이 자주 등장하고, 귀신이나 불사신 같은 환상적인 소재들도 단골 메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구전설화들처럼 해피엔딩이 많다.

'불운' 이란 제목의 민화는 우리나라의 '흥부전' 과 매우 유사하다.

부자 형님을 둔 가난뱅이 동생이 벼락부자가 되는 얘기인데, 제비 대신 '불운' 으로 의인화된 존재(귀신)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부전' 보다 초현실적.환상적이다.

형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아무 대접도 못받은 동생은 집으로 오다가 '불운' 이라는 귀신을 만난다.

귀신은 농부인 주인공을 부추겨 가산을 탕진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빈털터리가 되자 '불운' 은 그에게 황금이 묻힌 구덩이를 가르쳐준다. 주인공은 구덩이에 '불운' 을 묻어버리고 부자가 된다.

이 얘기를 들은 형이 '불운' 을 구덩이에서 꺼냈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는 '불운' 을 강물에 버리고 다시 행복해진다.

'마법의 반지' 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와 비슷하다. 농부의 아들이 마법반지를 얻어 공주와 결혼하는데, 공주가 나쁜 여자라는 점이 특이하다.

공주가 반지를 훔쳐 도망치자 주인공의 개와 고양이가 뒤쫓아가 반지를 되찾아 온다.

책속에는 짧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놀이같은 형식의 글도 있고,가끔은 민요같은 서사시도 포함돼 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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