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구두 미화원 초등생 구하고 익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 7일 오후 2시쯤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리 왕숙천. 친척들과 물놀이를 나온 권용주(權容柱.32.구두미화원)씨는 들뜬 기분으로 짐을 풀고 있었다.

오랜만에 즐기는 휴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사람 살려" 하는 비명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직경 10m 가량의 물웅덩이에서 白모(40.상업)씨가 자신의 딸을 구해 물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또다른 어린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웅덩이 주변에서 발을 구르며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로 權씨는 옷을 입은 채 뛰어들었다.

달라붙기만 하는 아이를 가까스로 물밖으로 밀어내느라 탈진한 權씨는 한차례 허우적거린 뒤 가라앉았다.

權씨의 자형인 박종구(朴鍾九.40)씨가 뛰어들었지만 權씨를 구해내지 못했다.

權씨의 시신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가 30여분 뒤 두길 밑 물웅덩이 바닥에서 인양했다.

이날 사고는 물놀이 나온 白씨의 두딸 중 작은 딸(7)이 발을 헛디디면서 웅덩이에 빠지자 白씨와 언니(초등5)가 잇따라 물에 뛰어들면서 일어났다.

權씨의 동생 용우(容雨.25.건축업.경북 청송군)씨는 "10년부터 남대문에서 구두를 닦으면서 6남매의 장남 노릇을 한 형님은 왜소한 체격이지만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는 불량배를 보면 참지 못할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 며 애통해 했다.

경찰조사 결과 소방헬기 급수 공급용으로 최근 만들어진 이 웅덩이 주변에는 '위험' 이라고 쓴 조그만 깃발을 매단 1m 높이의 막대기 3개만 설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역 파출소장인 남양주경찰서 김춘호(金春浩.48)경위는 "權씨의 선행은 요즘같은 세태에 귀감이 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표본" 이라며 "權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의사상자로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고 말했다.

남양주〓전익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