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발전기금 명목 거액 강제모금 강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는 15일 스승의날을 앞두고 학부모들이 '학교발전기금'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초.중.고교들이 5월 들어 학교운영위원회를 앞세워 학생 1인당 10만~1백만원까지 할당, 사실상 '강제모금' 을 하고 있어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한 초등학교 학생의 어머니 崔모(40)씨는 며칠 전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학부형으로부터 "학교발전기금을 내달라" 는 전화를 받았다.

체육관 건립, 학교 방송시설.책걸상 교체를 위해 1억원을 조성키로 했다. 반장.회장 학부모는 1백만원씩, 나머지는 10만원씩 할당됐다' 는 것이다.

崔씨는 "거절하기가 어려워 일단 '알았다' 고 했지만 불필요한 것을 내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 고 했다.

서울 영등포의 한 중학교 학부모 金모(44.여)씨는 최근 담임교사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급식 운반시설과 프로젝션TV 설치를 위해 9천만원을 목표로 모금하고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받은 지 1주일 만이었다.

金씨는 "전화를 받고서 어떻게 '못한다' 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수 없이 20만원을 냈다" 고 했다.

일부 학교는 학급별로, 학생 개인별로 학교발전기금 할당액을 정해 전화와 가정통신문으로 통보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 '울며 겨자먹기식' 으로 거액을 부담하고 있는 가운데 학부모 사이에 위화감이 증폭되고 있으며, 교육청.학교에는 비난.항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서지역 초등학교 반장 어머니인 李모(38.여)씨에게는 1백만원이 할당됐다.

그는 학교측으로부터 다른 학부모들에게 10만원씩 기부를 요청해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그는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다 " 10만원이면 한달 생활비라는 하소연에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고 전했다.

그는 "학운위가 모금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교장이 주문한 것" 이라며 "교육당국이 왜 이를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서울의 D중학교는 다면 칠판과 방송기기 등을 구입한다는 명목으로 8천여만원의 학교발전기금을 거둬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알게 된 서울시교육청은 감사에 나서 시정지시를 내렸다.

학교발전기금 모금이 극성을 부리면서 서울시교육청에는 항의전화가 하루 20여통 이상 걸려오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의 서영미(33)정책부장은 "서울뿐 아니라 경기.울산.광주.대구 등 전국적으로 모금 관련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며 "불법 사례들을 모아 다음주 중에 기자회견을 갖겠다" 고 밝혔다.

학교발전기금은 1998년 9월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과거 기부금품 대신 학운위가 투명하게 모금하는 새로운 제도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지난해 7백92개교가 학교당 평균 3천6백여만원을 모금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강남 지역의 S.W.H초등학교와 K고교는 2억원 이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