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명분 모호한 반 DJ정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번 선거에서는 영남의 반(反)DJ 정서와 87년 야권단일화 실패 이후 일부 개혁세력에서 나타난 반DJ 정서가 연합해 한나라당이 제1당을 차지했다.

제1당이 된 것은 영남지역이 다수를 형성하는 지역이고, 일부 개혁세력이 재야성으로 잘 포장한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질적인 내부 구성원을 묶는 공유코드는 반DJ 정서다.

반DJ 정서는 사실 별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DJ의 보스정치나 지역주의 관련성, 이전의 야권분열, 개혁의 미흡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한나라당이나 영남은 이와 반대로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한나라당은 당규에서 공천권한이 어느 당보다 총재에게 집중돼 있고, 의정활동을 놓아두고 정략적으로 부산에 가 대규모 집회를 했으며, 나름대로 개혁적인 386세대를 양당으로 갈라놓았고, 지난 2년간 개혁정책의 발목을 잡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에서 영남을 소외시켰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객관적인 사실확인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아마도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인해 모든 기업과 국민이 어려움을 겪은 것이 유독 영남에서 지역소외 때문이라고 받아들여진 부분도 있을 터이고, 40년간 인사에서 소외돼온 호남인들이 차별이 없어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은 것이나, 집권자로서 몇가지 핵심요직은 심복으로 구성하는 것을 분별하지 않고 호남 편중으로 판단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경제.인사정책에서의 지역차별은 지역감정의 출발점이므로 냉정하고 객관적인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반DJ 정서는 '다소 이질적인 세력간의 단결을 위해 공동의 적으로 설정된 것' 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영남에도 개혁세력이 있고 수구세력이 있다.

또한 경남에서는 반독재운동도 활발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보수여당을 지지했고, 정권교체 후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나라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다소 이질적인 개혁세력과 수구세력, 경북과 경남이 반DJ 정서로 단결했기 때문이다.

영남의 반DJ 정서는 DJ 자연인이 물러난 후에도 다른 어떤 사람을 공격의 대상으로 재설정할 것이 우려된다.

그럴 경우 반대감정은 확대재생산돼 민국당이 반 이회창(李會昌)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듯 온통 정치판이 반 아무아무개 하는 투전장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비판은 꼭 필요하지만 반드시 정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야 하며, 실천이 담보돼야 한다.

총선시민연대에서 낙선대상자를 선정할 당시 반인권.반부패전력 등 일곱가지 엄격한 기준을 설정했고, 공정성을 위해 개개인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기준을 예외없이 적용하고서 마음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반대운동이 국민의 폭넓은 호응을 얻은 것은 시민단체들이 민주화.개혁에 대한 실천이나 신뢰성에서 상당 부분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운동은 박정희씨의 장기집권과 유신독재, 전두환씨의 집권을 위한 국민 집단살상, 노태우씨가 불필요한 공사를 통해 커미션으로 수천억원의 사재를 챙긴 것 등으로 해서 지극히 타당한 명분이 있었다.

박정희씨에 대해서는 60년대의 경제개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명분과 분별력이 없이 결집된 세력에 의해 이뤄지는 지나친 반대는 '왕따' 나 '이지메' 에 다름 아니다.

영남은 다수를 형성하고 있어 뭉치면 집권 가능성이 크고, 오랫동안의 집권경험으로 인적 자원도 풍부하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전체 국민과 코드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명분이 모호한 반DJ 정서만을 작동시킨 나머지 대표적인 낙선대상자를 압도적으로 당선시키고 신뢰받는 후보들을 낙선시킨 것은 전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고립되는 길이다.

패권주의는 더 이상 되풀이될 수 없다.

박주현 <변호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